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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édéric Gros, "A Philosophy of Walking" | 정현종, "어떤 적막"책 읽는 즐거움 2023. 12. 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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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란 단어가 책 제목에 들어간 철학자의 에세이집은 읽다 보면, 쉽게,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거란 게 평소 생각인데, 이 책, 프랑스 철학자 Frédéric Gros (프레데리크 그로)의 "A Philosophy of Walking"도 사실 그랬다. 기다렸다가 도서관 책으로 읽었어야 했다. 이 책은 오늘 도서관에 기증할 생각이다.
본문이 (영역본은) 249쪽, 모두 33편의 에세이로 되어 있는데, 8편의 에세이는 걷기를 많이 한 여덟 사람 -- Rimbaud, Rousseau, Nerval, Nietzsch, Thoreau, Gandhi, Kierkegaard, Kant -- 을 이야기하고 있다. 걷기에 대한 이런저런 저자의 생각을 쓴 나머지 25편의 에세이는 서너 편으로, 다 해서 20쪽 정도로, 쓰였으면 나았겠다.
내가 즐겨 찾는, 글을 잘 쓰시는, 어느 분의 블로에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포스트를 읽고서 이 책을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 올라 있는 '책에서 추린 문장들'을 읽는 걸로 충분했다는 생각이다. 일부 문장을 다시 읽어보니, "정오의 올리브나무 잎사귀가 발하는 은빛 섞인 초록색"과 영역본의 "the silvery green of olive leaves at noon" (에세이 "Eternities"에서)에 해당하는 프랑스 원문이 궁금해진다. 방금 언급한 블로그 포스트 덕분에 나는 따로 책에서 몇 구절 인용할 필요가 없겠다. 같은 블로그에서 어제는 "어떤 적막 / 정현종"을 읽으면서, 철학자의 에세이집 한 권보다 시인의 시 한 편이 낫구나, 철학적으로도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적막 / 정현종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너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
적막으로 일가( (一家)를 이룬다 --
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
Frédéric Gros, "A Philosophy of Walking" (2nd ed., 영역본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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