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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고 했던가.
맥주가 약인 양
푹 자고 나니 이리 가뿐하고나.
뭐가 잘 안 내려가는 것처럼 속이 불편해서,
또 낮에 테니스 치고난 후의 갈증 해소도 저녁 식후로 미뤘던 터라,
젊은 사람들 노래 부르는 것도 들으면서 맥주 한잔하려고
화요일 밤에, 여기 젊은 한인 부부가 경영하는, 소주방 '몽'엘 다녀와서,
정말 오랜만에, '자다가도 소리 들리면 일어나야' 하는 그 소리도 못 듣고
푹 잘 자고 일어난 수요일 아침의 상태와 기분이 그랬다.
보통 때 같으면, 생맥주 700 cc 한 잔 마시고 올 시간밖에 여유가 없지만,
그저께 밤엔 좀 늦어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운터에서 류현진이 선발투수로 나온 경기 중계를 보며 마시다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 쪽 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한참 듣기만 하다가 결국 나도 몇 곡 부르게 됐다. 불러볼 수 있을
만큼 아는 대중가요의 대부분이자 노래방 같은 데서, 듣는 사람
생각 않고, 실제 내가 부르곤 하는 노래의 거의 전부를 부른 거다.
'사랑 Two'와 'My Way'는 괜찮게 불러진 것 같고
'그대 그리고 나'와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도 이날은 망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부를 적마다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가사를
맘에 들어 하는 '내가 만일'도 그런대로 불러 넘겼달까.
여기에다, 가끔 생각 나면 부르는 거로 이날은 안 부른 노래에 '보리밭'과
'아침이슬'이 있다. 하여튼, 아는 게 없으니 총정리 하기 쉬운 건 좋다.
생맥주 700 cc 세 잔과 OB 라거 750 cc 큰 병으로 하나 마시고 흥에 겨워 일어난
시간이, 그런 줄 몰랐는데, 자정이 훨씬 넘어서 였다. 집에 들어와 본 벽시계가
1시쯤이었으니.
늘 그렇듯, 너무 취하지 않고 다음 날 뒤가 깨끗한 것은 역시 천천히, 화장실도
자주 가며 마셔서 -- 더 정확하게는, 배가 부른 느낌 때문에 그렇게 마실 수밖에
없어서 -- 일거다. 그래도 이제부턴, 생맥주의 경우, 500 cc 한두 잔, 기분 따라
세 잔 마시는 걸 원칙으로 하고 지키도록 해야겠다.
더부룩한 느낌을 없애는 데는 실제로 시원한 생맥주가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잠이 약인 경우에는 맥주가, 와인이나 위스키나 마찬가지로, 간접적으로
약효를 내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내 방(office) 한쪽 벽 중앙, 카렌다 위에는, 당시 서울역 앞에 새로 생겼다는 맥주 양조장(microbrewery)
겸 레스토랑의 옥외 테이블에 놓인 생맥주 잔 사진(신문에서 오려낸 것)이 붙여져 있었다. 느낌이 좋아서
였다. 서울 가면 한번 가보려 했는데 결국 못 가보고 말았다. 대신 춘천에 그런 곳이 생겨서 좋아했는데
몇 번째인가 갔더니 일반 맥주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 방의 반대 편 벽 한쪽에는 큰 액자에 넣은 고흐의 'Cafe Terrace at Night' 가 걸려 있어서, 마치 창밖으로
밤 카페 풍경이 보이는 것 같았었다. 그걸 보고 있다가 늦은 저녁 시간에 방을 나서면 <카페 브라질>이나
<비르츠하우스>향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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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의 미소2013.06.04 11:01
맥주 좋아하시는 노루님께서
하하하~
약이라시면 약이 되는 것이라네요.
즐겁게 취하시면
그 또한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별이 반짝이는 고흐의 카폐 그림을 보니
독일의 어느 산장 모텔에서의
흑맥주 생각이 납니다.
추억을 생각하는것 또한
모두가 행복함이 아닐지요.-
노루2013.06.04 12:40
독일의 산장에서 흑맥주를 마신 적이 있군요.
추억이야 말로 가끔 꺼내보고 즐기는 보석이지요.
진짜 보석이 줄 수 없는 행복을 주기도 하고요.
더구나 그런 추억이야!
독일 Freibrug 에서 맥주도 마시고 생선구이 먹었던
생각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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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이河河2013.06.05 09:03
'아는게 없으면 총정리가 쉬워서 좋다' 라 말씀하시니 제 속을 잘 아시는것 같아 웃었습니다
저도 속이 더부룩 할때 와인 한잔 아니면 위스키 한잔 마시면 쏘옥 ~~~가라앉지요
한잔에 확 퍼지는 느슨함을 맛보며 마음을 살짝 놓습니다
그러니 분명 약이라 생각들어요
노래 부를 수 있는 용기도 생기고요ㅋ
<그대 그리고 나>는 힘든 노래라 제 실력 부족이구요
봄날은 간다는 저도 할 수 있어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이렇게요 ㅎㅎㅎ
책장안에 있는 사진(바위사이에 발 올려놓으신)과 고흐의 그림...없어져 버린 카페에서
그리움을 봅니다-
노루2013.06.06 00:40
소연님의 <봄날은 간다> 듣고 싶네요. ㅎ
시작을 잘 못하면 잘 안 올라가는 소리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옆에 누가 있으면 좀 같이 부르자고 부탁하곤 하는 곡이거든요.
사실 옛날엔 위스키나 럼주 같은 술은 구급약이었잖아요.
소독약이기도 하고 마취제이기도 하고요.
친구분들과 바닷가 여행 하시면서 고급스런 위스키와 와인이었나,
마시는 얘기, 소연님의 포스팅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 그때 사진에선
신선한 해산물들이어서 속이 더부룩했을 리 없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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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2013.06.05 18:15
노루님이 즐겨 부르는 노래 중에 윤도현의'사랑Two'가 들어있네요?ㅎ 저도 그 노래 아주 좋아하는데..
그래도 노루님 레퍼토리가 저보다 훨씬 다양하네요^^ 전 마이크 잡으면 벙어리가 되요.
그대 그리고 나, 봄날은 간다.. 모두 다 저도 좋아하는 노래에요.
저 날 맥주 많이 드셨네요. 700cc세잔이면 과음하신거 아니에요?ㅎ 맥주가 노래를 불렀군요.
노래가 잘 불러지는 날은 기분이 아주 좋더라구요.. 그래서 한잔 더 마시게 된다니까요~ㅎ
노루님에게도 저런 날이 있네요? 왠지 친근감이 생기고 더 좋은데요^^
고흐의 그림은 보고 있으면 정말 한밤중에도 맥주 마시러 나가고 싶게 만들어요.-
노루2013.06.06 00:59
한국에 있을 땐 사실상 맥주 거의 매일 마셨어요. 안 마시는 날이 한 달에 세 번?
'한국에서 가장 깨끗한 물'이라고, 외식할 때는 점심 때도 물은 안 마시고 맥주였지요.
사람들과 같이 마실 때는 대개 500 서너 잔이었고요. 어쨌든 다음 날 아침엔 맑은
기분으로 여느 날처럼 일찍 학교로 올라가곤 한 걸 보면, 생각도 몸도 다 맥주는 물로
양해를 했던 것 같아요.
2001년쯤엔가 어느 젊은 교수의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사랑 Two'가 가사가 좋아서
그걸 몇 번 들으면서 배웠는데, 노래방에서의 첫 시도가 의외로 성공적이었어요.
실은 '사랑 Two' 라는 제목부터가 맘에 들었던 것 같아요. ㅎ
고흐의 그림, 그렇지요? 오피스에 앉아서 앞을 보면 보이는 그림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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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ee2013.06.05 20:38
이방에 오는 블로그친구들은 부르는 노래도 공통되나 봐요.
모두들 교수님이 부르신 노랠 함께 부르면 되겠어요.
저 역시 거든요.ㅎㅎ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으로 시작되는 노래는 노랫말이 좋아서
승용차 속에 테이프 넣고 다녔지요. 아마도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테잎일거예요.
맥주, 와인... 제게도 때때로 약이던걸요.^*^
교수님의 마이웨이 듣고 싶네요.
저 사진 속의 교수님 방에 대해선 언급을 생략!!
제게 만감을 가져오는 풍경(?)이라서....-
노루2013.06.06 01:42
이젠 화석이 된 '단골 노래 메뉴'지요. ㅎ
사무실 사진을 찍어 놓은 게 서너 장 있는데,
머리 속 그림으로 보는 것과 막상 사진으로
보는 게 느낌이 또 달라요.
저 사진의 벽 맞은편 벽에 붙여, 소파 옆에 있던
작은 책장 생각도 나네요. 정이 들었었거든요.
지금,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르름이 참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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