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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tered Cover Book Store 에서이런저런 2013. 6. 10. 04:14
"세상 참 좁다" 소리가 책 세상을 두고도 나온다.
사실 책을 통해 책 얘기를 듣고 또, 동서고금에 걸쳐, 직접 만나보기가
사람의 경우보다 오히려 얼마나 더 쉬운가.
Tattered Cover 서점 라운지의 창가 테이블에서, 호박빵을 곁들여 커피를 마시면서,
집에서 들고 온 Freeman Dyson 의 'Infinite In All Directions'(1988)를 읽다가
금방 이런 문장을 만난다:
"내 식의 과학적 인본주의는 H. G. Wells 의 저작들 특히, 인류 역사를 명쾌하게 설명한,
1920년에 쓴 '역사 개설 (Outline of History)'의 영향을 받았다."
Dyson 의 책에서도 또 Wells 를 만나다니!
수학자이며 물리학자 Freeman Dyson 의 'Infinite In All Directions 모든 쪽으로 무한한' (1988)은
가장 최근에, 그러니까 두 주 전쯤에, 산 책들 중 하나인데, 현재 읽고 있는 책들 중에선
아마 그중 먼저 다 읽게 될 것 같다. 과학 현상으로서의 생명과 생존의 문제로서의
윤리와 정치에 관한 열일곱 편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Wells 를 Dyson 의 책에서 만나는 게 그러나 뜻밖은 아니다. Dyson 이
이어서 인용하는 Outline(1920, 초판) 첫 부분의 두 문장
"공간이 생명과 인류의 관점에서 비어있을 뿐 아니라, 시간 또한 비어 있다.
생명은 이 텅 빈 광대무한 속에 이제 막 점화된 작은 불꽃과 같다."
가 Wells 의'역사' 서언에 해당하는 걸 나도 인상적으로 읽었던 때문이다.
Dyson 의 책 제목도 다양성과 함께 비슷한 관점을 시사한다.
두 권 세트로 된 Outline (1956년 발행)을 요새 읽고 있는 중인데, 첫 권은 다 읽었다.
인류 역사 개설서로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책들 중 하나인데, 체리 빛깔 하드카버 장정도 무척 마음에 든다.
Outline 을 재작년 동네 도서관 책 세일에서 한 권 봤을 땐 그런 책이 있는 걸
처음 알게 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땐 안 사고 말았는데, 그 책이 보통 책이 아닌 걸
작년에 토인비의 축약본 '역사 연구'와 듀랑의 '철학 이야기'에서 읽고
그 며칠 후, 내 기억에 권당 1불씩에, 샀다.
사실, 듀랑의 'Story of Philosophy'는 60년대 후반에 한 번 읽었다.
그런데, 저자의 부인 아리엘 듀랑의 '코칭' 덕에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얘기는
잘 기억하면서,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Wells 의 Outline 을
그 책의 모델로 삼았다는 얘기는 왜 까맣게 잊었을까.
오늘 여기 온 건, 물리학자(양자역학의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유명한) 슈뢰딩거의
'What is Life 생명은 무엇인가'(1944)를 사려고 였다.
Dyson 의 책에서 가장 먼저 읽은 제4장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에서
슈뢰딩거의 책을 만난 건 너무도 당연했다. 오래전에 대강 읽은 그 책과,
그 책의 통계물리적 접근이 연상시킨, Landau 의 통계물리, Kubo 의 통계역학,
그리고 아끼던 수학 책 두세 권이 책장에 없는 게 새삼 아쉬웠다.
'09년 말 우송 중에 사라져버린 책 박스에 들어 있던 것들이다.
'슈뢰딩거의 작은 책'으로도 불리우는, 100 페이지도 채 안 되는,
'생명은 무엇인가' 는 생명과 물리학 법칙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찾는 슈뢰딩거의 책이 없어서, 그 책에 저자의 다른 글을 덧붙인,
'What is Life? : With Mind and Matter and Autobiographical Sketches' 를 주문했다.
마음(mind), 두뇌(brain), 의식(consciousness), 생명(life), 진화(evolution),
이런 열쇳말들이 요즘 내 독서의 한 관심 분야를 말해준다.
Dyson 을 발견하고 좋아서 망서리지 않고, 그리고
Frank Vertosick, Jr. 의 'The Genius Within 속에 든 천재'(2002)는 망서리다 산 것도 그래서다.
(각각 50센트와 4불에 샀다. 책값이 너무 싸면, 좋은 책이라는 확신 없이 살까봐 더 조심한다.)
Dyson 은 그의 논의의 기초를 "생명은 실체(substance)에 있지 않고 조직(organization)에
있다는, 생명의 성격에 관한 기본 가정"에 두면서, "나의 의식은 본질적으로 내 머리 속
분자들의 조직 형태이지, 분자들 자체의 내용이 아니다"고 가정한다.
Vertosick, Jr. 의 책은 서문에 앞서 인용한 니체가 책 내용을 짐작하게 했다.
그리고 이 비밀을 '생명'(Life) 그녀 자신이 내게 말했다:
"보라," 그녀가 말했다, "나는 항상 스스로를 능가해야만 하는 존재다."
-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
적어도, 오늘의 '나'(또는 나의 뇌)는 어제의 '나'(또는 나의 뇌)가 아니다.
다음 순간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르다.
나의 뇌는 끊임없이 적응한다.
우선 한 두 장(chapter)을 읽어 보니, '속에 든 천재'는 컴퓨터 과학의 신경망
이론에 근거한 뇌의 이해로 보인다. 너무 길게 쓴 책이란 생각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문득, 내 블로그 현판에 삶의 재미로 열거한 세 가지(따뜻한 마음, ...)에
독서의 즐거움은 어디에 걸리지?, 하는 생각이 든다.
움직임(뇌 운동)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주는 기쁨이릴 수 있겠지.
독서의 즐거움 중에서도
수학 책이나 물리학 책, 특히 수학 책의 경우는 참 특별하다.
잘 쓴 수학 책을 엄격하게 읽는 즐거움과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는 희열은 어떤 면에서는 서로 가장 가까운 종류의 기쁨일 것 같다.
수학을 영혼의 음악이라 했던가, 아니면, 음악이 영혼의 수학이라 했던가.
그런가 하면, 합리적 사고 라는 두뇌 운동으로서의 수학 책 읽는 재미는
'실수가 없는' 테니스의 재미와 상통하는 바가 있다.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테니스 치러 가는 차 안에서, 그에 더해서, FM 으로
고전 음악을, 어제 같으면 모차르트 교향곡 40번을, 듣는 행복이란!!)
Tattered Cover 의 세 서점 중 이곳 Highland Ranch 타운센터의 서점은 처음인데,
집에서 15분 조금 더 걸리는, 좌우 조망이 시원스런 드라이브도 즐길 겸
종종 들려야겠다. 전원도시 속 널찍하고 편안한 책방의
이미지도 맘에 들고, 커피도 맛있다.
* * * *
전화는 안 왔지만 지난 목요일에 주문하고 온 책이 서점에 와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말고, 바람이나 쐴 겸 어제 금요일 저녁 무렵 TC 서점에
들렀다가, 라운지 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만 몇 장 찍고 왔다.
오늘은 연락을 받고 나갔다. 'What is Life? 의 계산을 끝내고 나오려는데
어떤 책이 생각났다. 재작년 뉴욕 타임즈 서평에서 처음 읽고는 언제 적어도
paperback (초판 하드카버가 어느 정도 팔린 후 나오는 저가판) 을 사서 읽어봐야
겠다고 마음에 새긴 Roger Ebert 의 'Life Itself: A Memoir 삶 자체: 회고록'(2011)이었다.
뉴욕 타임즈 칼럼니스트 Maureen Dowd 의 그 서평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꼴불견으로 내 생각만 하고 거만했다 I was insufferably full of myself" 고,
일리노이 대학 시절에 대해서 그는 새 회고록 'Life Itself' 에 쓰고 있다.
수업 첫날에 그는 영어 101 (과목)을 가르치는, 코르덴 양복을 걸친
소설가 Daniel Curley 에 반했다."
시카고 썬타임즈에서 영화 비평을 썼던 Ebert 의 회고록에 대한 서평에는
그의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구절들이 여럿 있었지만, 내게는 , 내 모교이기도 한,
어바나-샴페인의 일리노이 대학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충분했다.
'What is Life' 와 'Life Itself' 두 권을 사 들고 나와 집으로 차를 몰고오면서야
두 책 제목에 'Life' 가 같이 들어 있는 것에 유심해졌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그래서 Ebert 의 책이 그때 생각난 건지.
슈뢰딩거 책에서 '정신과 물질,' ...,
에버트의 책에서 'University,' '거인 존 웨인,' 'Ingmar Bergman,' ....
삶 자체를 즐길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고나!
서점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서점 화장실 벽.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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