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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family room) 벽에 걸린 두개의 달력을 1일이 목요일이고 그림이 그중 맘에 드는 달이 보이도록 다시 걸었다. 한 달력은 June 2000, 다른 달력은 February 1990, 각각 모네의 Water Lilies 와 세잔느의 Still Life with onions, Bottle, Glass and Plate 를 보여준다. 사실, 정물화를 좋아하게 된 건 세잔느 때문이다. 저 그림도, 달력 그림이긴 하지만, 늘 보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점점 더 좋아하게 됐을 거다.
연말에 명화 달력 사러 가기도 좋아하지만, 새 달력을 살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그럴 정도는 아니다. 집에 걸 달력을 안 산 지가 10년쯤 됐다. 그림이 좋아서 갖고 있는 달력이 안방에 걸린 것들 말고도 댓 개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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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갖고 있던 책들은 거의 다 잃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한글로 쓰인 책이나 번역서는 우리 집 책장에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비행기 안에서 읽으면서 한두 권 가져온 한국 단편집들은 한 책장의 한쪽에 따로 쌓여 있다.
엊저녁에 무슨 책을 찾는데 책장에서 한국 책이 한 권 보였다. 꺼내보니 릴케의 '이 아름다운 인생을 위하여'(안동민 역, 1968)다. 70년 정초에 산 걸로 적혀 있다. 여기저기 몇 쪽 읽어본다. 아, 그땐 이런 구절에 줄(밑줄이 아니라 옆줄)을 쳤었구나, 지금 같으면 이 구절에 더 줄을 쳤을 텐데 ...
두 구절 여기 적어본다 (몇몇 단어는 생략).
"거의 40년 동안, 끊임없이 ... 그의 일의 가장 ...중심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것 ... 에야말로 세잔느라는 존재의 무한히 위대한 감동적인 점이 있습니다 -- 그리고 그의 그림의 아직 듣지 못한 신선함, 순결함이, 이 완고함의 선물인가를 언제고 나는 보여주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그림의 표면은 지금 막 짜른 과일의 속 같은 겁니다. -- 이에 반하여 대부분의 화가는 자기 자신의 그림에 이미 감상자, 시식자로서 맞서고, 일을 하는 도중일지라도 구경꾼으로서 수용자로서 그 그림의 순결성을 더럽히고 맙니다."
"예술 작품에는, 비평처럼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는 것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이란 필경,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공연한 오해에 그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연말에 Ha Jin(중국 이름, Jīn Xuěfēi 金雪飛 )의 책을 두 권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소설 The Crazed (2002) 와 단편집 A Good Fall (2009). Ha Jin은 이야기체 문장에 참 능하다. 작중 인물들의 대화를 바로 곁에서 듣고 있는 듯하니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재밌다. 서술체 문장들도 간결해서, 뉴욕타임즈 서평 그대로, "다만 그리고 정확히" 필요한 얘기를 들려준다는 느낌이다. 한인 미국 작가 이창래와는 이 두 가지에서 어떤 면으로는 대조가 되는 것 같다. 단편집이 더 재밌었다.
The Crazed 에서는, 천안문 사태가 터질 그 무렵에, 뇌졸증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중국 지방 대학의 존경 받는 (중국) 고전문학 교수 양 교수를 그의 딸의 약혼자이기도 한 그의 (대학원) 학생이 간호 도우미로 보살핀다. A Good Fall 에 실린 단편들은 다 미국에서의 중국인들 삶이 소재다.
다음은 단편 'Choice' 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녀'는 '나'가 과외지도하는 학생이다. 대학 지원하면서 제출할 에세이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그녀가 쉽게 그리고 (둘러대지 말고) 직접적으로 쓰기를, 매 문장이 전체에 어떤 것을 보탰기를 확실히 하도록,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반복은 결점으로 생각하도록 권했다. ... 그들의 작업은 지원자가 글을 쓸 줄 아는지를 결정하는 거다. 뜻이 분명하고 흥미있는 글이기만 하면 내용은 별 상관이 없다."
단편 'Children As Enemies'에서는, 외아들네와 함께 살려고 중국의 집을 정리하고 온 할아버지, 할머니에는 각각 열한 살과 아홉 살인 손자, 손녀의 미국 학교 교육이 아주 못마땅하다. 다음은 할아버지가 하는 애기다.
"여기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진짜 숙제를 내주지 않는다. 대신 많은 프로젝트를 내준다. ... 어떤 주제는 어른들도 대들기 어렵다. 예를 들면, '문화는 무엇이며 어떻게 창조되는가?' '이락전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논리를 펴라' '인종에 따른 차이가 어떻게 미국 사회를 갈라놓고 있는가?' 그리고 '세계 무역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왜?' ... 그것들이 학생들의 정신을 넓혀주고 그들에게 더 자신감을 줄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러나 그 어린 나이에 그들은 정치가나 학자처럼 생각하게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규칙을 따르도록, 곧, 첫째로 신뢰할 수 있는 시민이 되도록 해야 한다."
"플로라[손녀]에게 반에서 몇 등 했는지 물을 적마다 그애는 어깨를 으쓱하며 '몰라요' 하곤 한다.
'네가 모른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그애가 오빠보다 더 낮을 리는 없지만 반 평균보다 아주 아래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Ms. Gillen[선생님]은 우리 등수를 안 매깁니다, 그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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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11시쯤에 들른 스타벅스.
이 날도 새벽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연다고.
새해 아침 10:57. (10시 이전엔 눈이 내릴 것 같은 날씨다가 잠깐 맑았다. 오후부터 자정 넘게까지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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