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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명해진 구절
    이런저런 2015. 7. 2. 21:37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 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 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우국(憂國)」(1961, 한역본1983).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 신경숙, 「전설」(1996).

     

    문학 작품의 그것도 단편 소설의 한 구절이 이 두 구절들처럼 널리 읽히고 유명해진 예는 드물 것 같다. 그것도 며칠 새에 그렇게 된 예는. 아시다시피 신경숙의 표절 의혹에 관한 신문 보도들 때문이다. 나는 이것들을 열흘 전쯤 (온라인) 경향신문에서 읽었다.

     

    '우국'은 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90년대 초엔가 영역본 'Patriotism'으로 읽었다.  그게 실려 있는 "The Short Story: 50 Masterpieces" (Ellen C. Winn 편집, 1983)를 책장에서 찾아내어, 호기심에서, 해당 구절을 읽어봤다.

     

    As both were possessed of young, vigorous bodies, their relationship was passionate. Nor was this merely a matter of the night. on more than one occasion, returning home straight from maneuvers, and begrudging even the time it took to remove his mud-splashed uniform, the lieutenant had pushed his wife to the floor almost as soon as he had entered the house. Reiko was equally ardent in her response. For a little more or a little less than a month, from the first night of their marriage Reiko knew happiness, and the lietenant, seeing this, was happy too."

    -- Yukio Mishima: "Patriotism" translated by Geoffrey W. Sargent in "Death in Midsummer and Other Stories,1966.

     

    사나흘 전에는 경향신문에서, 전설」과「우국(憂國)」사이에 유사한 부분이 5곳 더 발견되었다는 기사와 표절 의혹에 관한 신경숙과 심보선 시인의 말을 보도한 기사를 읽었다.

      

    신경숙은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 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은 내 기억을 믿지 못한다”고 말했다.

     

    심보선 시인도 "표절을 '타인의 글을 독자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은폐하면서 자신의 글로 둔갑시켜 독자에게 선보이는 행위'로 정의하면 문제가 된 신씨 소설은 표절에 해당한다"며 ...

     

    맨 위에 인용한 두 구절에 근거해서 누가, 특히 평론가나 시인, 소설가 같은 작가가,  신경숙은 미시마 유키오의 글을 "독자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은페하면서 자신의 글로 둔갑시켰다"고 단정해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게밖에는 상상할 수 없다는 그의 상상력의 빈곤 때문일 수도 있고, 그보다 더 나쁘게 생각될 수 있는 것도 포함하는 어떤 다른 이유에서일 수도 있겠는데, 어쨌든 그런 면에서,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국'을 읽은 기억에 관한 신경숙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만큼 신경숙의 심성에 대해 어떤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게 아니면, 보통의 좋은 사람 중에는 적어도 신경숙의 저 말을 긍적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이는 많을 것 같다. 그 경우 그게 그렇게 어렵기만 할까. 작가라면 보통 사람들보다 그런 이해와 상상력이 뛰어나는 편이고 도움이 될만한, 글 쓰기의 어떤 개인적인 경험도 있기 쉬울 게다.

     

    2001년엔가 김윤식 교수의 표절에 관해서 우연히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읽으면서 무척 화가 났던 생각이 난다. 너무 조용해 보였고, 그리고 아마 그 무렵이 어떤 국문학 교수의 비도덕적인 -- 그러면서도 그걸 본인은 정말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토록 뻔뻔한 건지 여전히 모르겠는데 -- 면에 접하게 된 때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노혜경 시인이 당시에 쓴 글이 있다:  김윤식 교수의 표절에 관한 노헤경 시인의 글 (나중에 또 안 찾아봐도 되도록 여기 연결시켜 놓는다).

     

    "The Short Story: 50 Masterpieces"의 '차례'를 보면서, 처음 그걸 봤을 때 들었던 걸로 기억하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각각 한 편씩의 단편이 실려 있는 50명의 작가들 중에 미국 작가 말고는 Leo Tolstoy, Guy De Maupassant, Anton Chekhov, Thomas Mann, James Joyce, Virginia Woolf, Franz Kafka, D. H. Lawrence, Katherine Mansfield, Issac Babel, Jorge Luis Borges, Dorris Lessing, Gabriel Garcis Marquez 와 함께 Yukio Mishima 의 이름이 끼어 있는데, 우리 한국 작가의 이름도 그의 영역본 단편 제목과 함께 볼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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