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ly gift' 를 '수수한 선물'로 번역하고픈 미련이
남는다. 그냥 '선물'로도, 'gift'처럼, '재능'이나 '은총'의
뜻으로도 읽힐 수 있는 데다, 사실, 시어의 모호성도 시
읽는 재미의 한 요소인데, 그걸 살리면서의 번역이 더
낫다는 생각에서다. 'Nothing'은 그냥 둬도 좋을 것 같다.
평범한 재능과 막힌 말들이
우리 마음에게 설명해주는 건
Nothing --
'Nothing'이
세상을 새롭게 바꾸는 힘 --
또 달리는, 영시의 경우 대체로 영어로 읽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시로 읽는 게 문제라는 관점에서, 번역을 시의
'특정한' 한 해석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다들 원문을 읽는 시대에도 번역은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된다.
아래는 강은교 시인의 번역이다.
소박하게 더듬거리는 말로
인간의 가슴은 듣고 있지
허무에 대해 --
세계를 새롭게 하는
힘인 허무 --
에밀리디킨슨, 강은교 옮김,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1976)에서
가져왔다. Ted Hughes, A Choice of Emily Dickinson's
erse (1968)에서 선별한 42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책을 펼치면
왼쪽 페이지가 원문이고 오른쪽이 그 번역이다. 강은교 시인이,
그것도 젊었을 때 (서른 안팎에), 번역했다는 것에 끌려서,
지난번 서울에 갔을 때 명륜동의 아라딘서점에서 산 책이다.
어쩌다 가끔 영시를 대강 번역해 놓고는, 어떤 누구라면 쉽게
멋진 번역을 할 텐데, 그걸 볼 수 있으면 재미도 있고 얻는 것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에서 이따금 시 한편을
골라서는 먼저 원문만 보고 번역해보고 나서 나중에 강은교
시인의 번역과 함께 읽어볼 수 있겠단 생각이 그러나
결정적이었다.
He said nothing, 그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의 'nothing'을
뜻하는 우리말 단어를 찾다가 단념했다. 다 번역해서 써놓고
강은교 시인의 번역을 보고는 조금 놀랐다. '허무'보다는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뉴앙스의 'nothing'으로 나는 시를
읽은 때문이다.
며칠 전에 읽은 구절이어서만은 아닐 텐데, T. S. Eliot 의 말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