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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Swir 의 시 "시 낭송"시 2021. 1. 24. 10:43
폴란드 시인 Anna Swir 의 "Poetry Reading" (Czeslaw Milosz &
Leonard Nathan 영역)을 번역해본다:
시 낭송 / Anna Swir
나는 둥글게 오그리고 누워있다
추운개처럼.
왜 내가 태어났고
왜 삶이
이런 괴물인지
누가 말해줄까.
전화가 울린다. 가서
시 낭송을 해야 한다.
내가 들어선다.
백 명의 사람들, 백 쌍의 눈들.
그들이 쳐다본다, 기다린다.
무엇에 대해선지 나는 안다.
나는 그들에게 말해야 하는 거다
왜 그들이 태어났고,
왜 삶이
이런 괴물인지를.
이 시에 대한 Czeslaw Milosz (체스와프 미워시)의 짤막한
코멘트에 따르면, 폴란드에서는 시를 단지 미적 경험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시 낭송회에 삶과 죽음에 관한 여러
질문을 갖고 참석한다고.
(번역 노트: "왜 삶이 / 이런 괴물인지"는 처음에는, 더 직역에
가깝게, "왜 이런 / 삶이라는 괴물인지"로 했던 걸 그냥 쉽게
읽히도록 바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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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2021.01.25 02:36체스와프 미워시는 이 시가 그런 시 낭송회에서의
시인, 청중 양편의 황당스러움, 'ignorance and
helplessness' 를 잘 표현했다고요.
저는 시를, 가장 단순하고 헐겁게는, 표현하고 싶은
것을 산문의 최소한의 격식으로부터도 자유롭게 글로
표현하는 것쯤으로 생각하지요. 그런 자유가 이왕이면
보다 음악적인 운문을 낳아줄 수 있으면 더욱 좋고요.
생명에 대한 생각이 죽음에 대한 생각에 연결되는 것
같아요. 이 점에 대해서는, 생각나는 다른 한두 편 시
(번역) 포스팅에 곁들여, 따로 몇 마디 써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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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2021.01.25 10:40ㅎ ㅎ 불현듯 어찌 되셨다고요? ㅎ
"왜 이런
삶이라는 괴물인지"
가 더 원문에 가까운 번역이란 생각이지만,
"왜 삶이
이런 괴물인지"
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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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지기2021.01.25 06:19
관객 백 쌍의 눈들 가운데 한 쌍의 눈을 가진 저는
불현듯 괴물이 되어
추운 개처럼 웅크리고 있네요. -
여름하늘2021.01.29 11:06
시는
저야말로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더 아름답게 느껴 질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는 ...
미적경험 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왜 삶이 이러한 괴물인지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하는
시를 쓴 그녀의 마음에서 왠지 섬뜻한 기분이 드네요
이러한 시를 처음 접해봐서요
이것도 저의 편견이겠지요.
다양하게 시를 접해 보는것도 좋은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루2021.01.30 01:51
"나는 그들에게 말해야 하는 거다"에서 그렇게 읽으신 것 같은데,
시인이 그날 낭송한 시도 십상 그런 시는 아니었을 거고, 다만 시
낭송 후 청중과의 대화 시간에 나올 인생이나 철학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 자신도 마찬가지로 모르는데 대답해야 하는, 그런
황당함을 쓴 시지요. 그런 면에서는 이 시가 '철학과 시의 관계'를
보여주는 시로도 읽힐 수 있겠지만요. 시인 Anna Swir는 따뜻하고
열정적인 시로 잘 알려져 있지요. 그녀의 다른 시 한 편을 번역해
포스팅할까봐요.
"나는 그들에게 말해줘야 하는 처지다"로 바꾸면 더 좋을라나요.
생각해봐야겠어요. -
여름하늘2021.01.30 10:19
아닙니다
바꾸지 않는것이 더 좋습니다.
저는 시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리고 사실 번역시는 그 나라의 정서도 좀 알고 있어야
이해 하기 쉬운데 본 바탕을 모르는 상태로 읽으니 번역시가
제게는 사실 어렵습니다.만...
이번 시는 용기를 내어 댓글을 달았습니다. ㅎ
가끔 뭘 모르고 댓글을 달더라도
귀엽게 봐주세요 ㅎ
번역시에 관해 이제 막 걸음마 상태이니까요 ㅎ -
노루2021.01.31 01:09그게 그거라 안 바꾸기로 합니다.
시야 알고 모르고 할 게 있나요. 그저 읽어보니, 그게
꼭 시인이 표현하려던 거든 아니든,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들고, 그런 느낌, 생각을 그런대로 몇 마디로
잘(재밌게) 썼다 싶어 한 번 더 읽어보게도 되는, 하여튼
어떤 읽는 즐거움을 주는 시는 저는 그냥 좋더라고요.
어느 미국 시인도 그랬더군요. 네루다, 월콧 등 몇
시인의 시를 두고두고 읽고 또 읽는데 그때마다 어떤
단어는 새로운 뜻으로 읽힌다고요. 시인들도 또 대체로
그런 시를 쓰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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