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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mily Dikinson 의 시 "사랑밖에"
    2021. 2. 16. 10:45

    다른 이들이 어떤 것들을 쉽게도 잘 표현하는 걸 들으면 즐겁다.

    그런 적이 자주 있다. 영시를 번역하면서는 그런 사람을 종종

    떠올리게 된다.

     

    전에 올린 Emily Dikinson 의 시 "Homely Gift" 에도 썼지만,

    강은교 시인이 대학원 시절엔가 번역한 에밀리 디킨슨의 시선집

    (영한대조) "고독은 잴 수 없는 것"을 2018년 서울 방문 때 사게

    된 건, 그러고 싶을 때 원문을 먼저 번역해보고나서 강 시인의

    번역과 비교해보면 재미도 있고 우리말 공부도 될 것 같아서였다.

     

    오늘 "생일: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That Love Is All There Is" 원문과 번역(장영희)을 읽어보니,

    내(가 원문을 읽으면서속으로 해본) 번역과는 좀 다르다.

     

    (장영희 교수가 주신 세 권의 저서도 내게는 특별한 책인데, 그의

    밝은 미소를 연상시키는 표지의 두 책, "생일"과 "축복: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을 지난번 서울에서 눈에 띄어 사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또 든다.)

     

    강은교 시인의 책을 꺼내 보니 같은 시가 맨 앞에 실려 있다.

     

    아래는, 쉬운 문장으로 된 네 줄짜리 시의 조금씩 다른 세

    번역이다. 원문에 이어, 직역에 가장 가까운 내 번역, 그보다는

    의역이랄 수 있는 각각 강은교 시인과 장영희 교수의 번역,

    그리고는 그 차이에 대한 간단한 내 생각이다.

     

     

          That Love Is All There Is / Emily Dickinson
     
         That Love is all there is,
         Is all we know of Love;
         It is enough, the freight should be
         Proportioned to the groove.

     

     

    <내 번역 -- 첫 줄은 "사랑뿐이라는 것"이 나을지 망서려진다>

     

         사랑밖에 / 에밀리 디킨슨

     

         사랑밖에 없다는 것,

         사랑에 대해 우리가 아는 전부다;

         그거면 충분하다, 짐의 무게만큼

         바퀴 자국은 깊다.

     

     

    <강은교 시인 번역>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사랑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 사랑을 우린
         자기 그릇만큼밖에는 담지 못하지.

     

     

    <장영희 교수 번역>

     

          이 세상에는 사랑뿐

     

         이 세상에는 사랑밖에 없다는 것,

         사랑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것뿐.

         그러면 됐지. 한데 화물의 무게는 골고루

         철길에 나누어져야 한다.

     

     

    세 번역이 다 첫 두 줄 반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다만, 강 시인의

    둘째 줄 "우리 사랑이라 알고 있는"은 "우리가 사랑이라 알고

    있는"의 친밀한 구어체로 쓴 것 같은데 그게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나머지 원문 "freight(화물, ...)은 groove(홈, 바퀴 자국, ...)와

    비례한다(해야한다)/군형이 잡혀야 한다"의 번역에서는 다 다르다.

     

    내 번역은, 원문을 '무거우 짐을 실은 마차의 바퀴 자국 홈은

    그만큼 깊(어진)다'의 시적인 축약으로 읽고 될수록 직역한 거다.

    비유로 쓰였기 때문에, 비유에 따른 다양하게 가능한 의미 해석이

    번역으로 제한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도 그게 좋다는 생각에서다.

    (사실, 끝 두 줄의 이런 저런 해석이 떠오른다. 그게 내겐 이 시의,

    그리고 대체로 에밀리 디킨슨 시의, 매력이다. 루이즈 글릭이 쓰고

    싶어하고 칭찬하게 된다는 '대답보다 물음이 많은' 시.)

     

    강은교 시인의 번역은, 각자 자기 그릇에 담을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한다는 식의 의역으로 읽힌다.

     

    장영희 교수의 번역에 대해선, 그가 해설에서 "사랑에 관해서

    독특하게 '화물기차의 비유'를 쓰고 있습니다. 화물의 무게가

    철길에 골고루 안배되어야 탈선이 되지 않고 기차가

    달립니다"라고 한 것이 설명이 되는데, 'groove'가 일단 '기차

    선로'로 읽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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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nbee2021.02.17 08:25 

      저는 세 분 번역 중에 교수님 시가 제일 좋은데요?
      특히 '짐의 무게만큼 바퀴 자국은 깊다'가
      참 좋아요.
      루이즈 글릭의 선호를 저도 매우 선호하고요.ㅎ

      장영희 교수님의 <생일>은 어느해 파리 가면서
      구입하여 은비네 집에 놓고왔더니, 갈 때마다
      그집 화장실 책선반에서 꺼내 읽곤 하게 되더라구요.ㅋ

      2월에 생일이 들어 있는 모든 이들, 생일 축하해요.
      위 세 분 중에도 2월생이 계시죠?^^
      오늘은 제 아들 생일이에요.

      이곳은 어제 오늘 많이 추워요.
      거긴 어떤가요?

      • 노루2021.02.17 09:31

        세 달 전쯤에 읽은 루이즈의 에세이집에서 읽은 말이 생각나서
        쓴 거였는데, 찾아보고 정확한 인용이 되게 막 고치고 보니
        eunbee 님 댓글이 떴네요. ㅎ

        지난 주에 본, eunbee 님의 반추상화 같은 아름다운 사진들이
        생각나요.

        아드님 셍일 축하해요! 저와도 같은 달이네요. ㅎ

        장영희 교수는 짧게 살다 가셨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다만 책이나
        신문의 칼럼을 통해서만이라도, 기쁨을 주고 가셨단 생각이 들어요.

        일요일엔 낮 기온도 영하 16도였는데 지금(화요일 오후 5:15)은
        영상 2도, 내일과 모레 낮 기온은 0도 안팍, 금요일엔 7도가 예보네요.

        원문의 비유가 좀 생경해 보일수록 그건 직역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eunbee 님 코멘트를 읽으니 또 드네요. 익숙하지 않은 것이
        익숙해지면서 주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 돌담2021.02.18 05:26 

      영어 초보 수준인 제가 보기에
      노루 님의 글이 원문에 가장 충실한 글 같습니다.
      사랑.. 그거면 충분합니다. ㅎ

      • 노루2021.02.18 07:57
        일반 통역의 경우는 화자의 '뜻'이 잘 전달되는 게 중요하니
        때로는 우리 속담까지 동원해가며 풀어 설명하기도 해야겠지요.

        번역자의 관점이나 의도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고 ...., 아무튼,
        번역(하기)의 한 예를 보여주는 건 될 것 같아서요.
    • 교포아줌마2021.02.26 06:51 

      노루님 번역이 무리가 없어서 좋은데요.
      의미로는 강은교님과 같은데

      부정적으로 한정하지 않고
      담담하게 진리를 말하는 것이
      더 힘이 있게 느껴집니다.

      노루2021.02.26 11:34
      역시 원문이 좋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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