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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로, 맛있어! 하던
사과나 복숭아나 자두
씨 빼낸 반쪽을 접시에 얹어 준다.
맛있어! 하면서 사과를 먹다가
한 번 내려놓으면 다신 안 집는다.
더 이상 사과처럼 안 보이나 보다.
복숭아를 보다가 딴 데도 보다가
용기가 났는지 한입 베어 문다.
맛있네, 맛있어!, 하면서
내려놓을 새 없이 먹어치운다.
핏물처럼 검붉은 자두 반쪽은
끝내 입에, 아니 손도, 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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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ee2013.07.31 00:31
입맛의 기억
색채/빛의 기억
냄새의 기억
제 큰딸이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프랑스의 어느 병원엘 갔는데 갑자기 충주 이모네집이 떠오르더래요.
이상하다 왜 이곳에서 이모네집이 떠오르는걸까 했더니
그것은 형광등 불빛 때문이었답니다.
프랑스에서는 형광등의 창백한 빛을 보기 힘드니. 그 병원의 형광등이 어릴 적 봤던 이모네를
떠오르게 했다고 해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푸르스트의 책에서는 어릴 적 먹던 마들렌을 먹고
그 어린날들을 떠올리게 되지요.
핏물처럼 검붉은 자두의 반으로 자른 퍼플색이 저는 좋아요.
처연한듯, 그 어떤 각인된 기억의 멍같은 그 빛깔이....-
노루2013.07.31 02:05
형광등 불빛, 그랬을 것 같아요.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갈 땐 인천공항에서 늘 밤에 버스로
서울을 거쳐서나 직행으로 춘천으로 가곤 했는데 아파트며
거리의 불빛이 창백하고 음울한 형광등 불빛이었지요.
습관처럼 익숙하던 것들인데도 그것들을 뒷받침해 주던 기억이
사라지거나 흐트러지면 어리둥절하게 되겠지요. 운동 선수들
같으면 발리나 퍼팅의 감을 잃고 좀처럼 다시 못 찾는다든가요.
목소리의 기억도 특이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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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이河河2013.07.31 12:42
제목과 글을 읽고 또 읽습니다
넘 큰 의미를 부여시킨것은 아니신지요 감히.......ㅎ
넘 어려워요~~~~-
노루2013.07.31 13:36
ㅎ 맞아요. 사실은 자신을 위한 간단한 메모로 쓴 글이라서요.
그냥, 우리 먼 조상들이 처음 야생 과일을 보고서는 정말 배고프지 않으면
선뜻 먹어 보기가 쉽지 않았을 거란 간단한 얘기를 ...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서
한 꺼풀씩 진화의 유산이나 효과가 제거되다 보면 바로 그 먼 조상의 행동
같은 걸 보여주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
그냥 가볍게 읽고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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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2013.07.31 22:21
올 여름 화잇 피치가 참 달고 맛있어요.
뉴욕 큰애에게 갈 때 냉장고에서 2개를 꺼내다 주었더니, 아주 맛있게 먹더라구요.
걔 동네의 수퍼에서 화잇 피치를 찾으니...없는 거예요. 제가 실망해서리,
'어쩜, 화잇 피치가 없는 곳이 다 있냐!' 두 손을 들고 답답해하는 모습에,
아들이 깔깔 웃더라구요. 그냥 복숭아 몇 알 사왔는데, 역시 맛이 후졌답니다.노루2013.08.01 00:01한국에서 아주 크고 흰(특히 속살이) 복숭아가 정말 맛없던(심심하던) 기억도 있어선지
여기선 복숭아는 대체로 캘리포니아산 옐로우를 찾곤 했는데, 오늘은 화잇 피치를 좀
사다 먹어야겠네요.
이국에서도 수입 채소, 과일은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는 얘기가 엊그제 뉴스에 나왔었지요?
간식으로 date 와 fig 를 즐기는데 이젠 한동안 fig는 삼가고 캘리포니아산 date 나 먹으려고요. -
헬렌2013.08.09 19:43
주어가 빠진 글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상상을 하게 되요.
단순한 저야 당연 노루님이 과일을 깎아서 누군가에게 디저트로 준 걸로 읽었구요ㅎ
과일을 골고루 담아주는 센스가 있으시구나..
씨를 빼서 주는 정성을 가지셨구나..
무얼 잘 먹고 무얼 안먹는지 관심있게 보시는구나..-
노루2013.08.10 00:00
여기 복숭아나 자두는 흐물거리지는 않으면서 잘 익어서,
칼로 씨가 닿는 데까지 반으로 자르듯 하고 나서 손으로
두 토막 내기가 아주 잘 돼서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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