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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직소포에 들다시 2014. 7. 13. 23:53
<즐겨찾기>에 연결시켜 놓은 시 잡지 <유심>에 들어가서 '유심 문학 토크: 천양희'를 읽었다. 천양희 시인이 시 '직소포에 들다'를 쓴 사연이 있다. 시가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찾아왔다.
직소포에 들다
천양희
폭포 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정토! 나는 늘 꿈꾸어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 수궁을.
폭포 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 소리 같은 우레 같은
기립박수 소리 같은 - 바위들이 몰래 흔들한다
하늘이 바로 눈앞인데
이곳이 무한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절창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7년 전에 한 번 가본 직소폭포.
그보다도 20년도 더 전에 다녀간 시인이
13년 만에 완성한, 당신의 대표시로 아낀다는
'직소포에 들다'
나를 다시 직소포로 데려간다.
섞을 울음이 없는 나는 절창 한 대목도 못 배우고
여전히 차안(此岸)에서나 놀다 나온다.
신기한 건, 친했던 한 사람 길에서 만나면 알아는 볼 세 사람
우리 다섯이 바위 위에 함께 서 있었다.
관음봉 오를 때는 갑자기 눈이 내렸었지.
관음봉이 올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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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편지2014.07.14 11:39
시인 천양희.
얼마든지 볼 수 있었던 시인, 그리고 그의 시 한 편인데
보면서, 여느 시를 읽듯이 보면서,
'노루님이 여기에 옮겨 놓으니까 더, 아니면 특출한 시로 보이는가?' 싶었고,
시인 자신이 대표시라고 했다니까
'그럴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절창"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많은, 절창이기 때문인데,
여기서 볼 수 없었다면 그런 줄도 몰랐겠지요.
저런 시 한 편이면 만족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꼭 덧붙여야 할 것은,
"섞을 울음이 없는 나는 절창 한 대목도 못 배우고
여전히 차안(此岸)에서나 놀다 나온다"는
그 말씀이 시만큼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신기하다"고 하신 건, 어쩌면 삶의 흔적이고 그런 것인데
참 신기하게 표현하셔서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노루2014.07.15 00:29천양희 시인이 "나는 죽어도 저런 곳에 가서 죽겠다 싶어서" 가서는 폭포 "소리를 들으면서 한참을 바위에 앉아서 폭포처럼 울었"다네요. 그리고 "그때 어디선가 ‘너는 죽을 만큼 잘 살았느냐?’는 소리가 들리"고 "그래서 폭포 소리를 가슴에 묻고 서울에 와서 다시 살기 시작했"다고요. 그러니, 저 시를 읽는 느낌이 시인 자신이 읽는 그것과 비슷하기도, 사연을 듣고 나서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막상 시를 찾아 읽어 보니 그렇게 절절한 느낌이 안 들어서요.
미국의 어느 여성 시인이 8년인가 걸려서 자신의 시 마지막 줄의 한 단어를 바꿨다던 게 생각나는데, 13년 만에 완성했다는 시이기도 하고, 또 그 폭포와 관음산(관음봉)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서 포스팅하기로 했지요.
산악회 회원 40명쯤이 함께 한 산행이었는데, 등산로가 폭포를 좀 비껴가게 되어 있어서 다들 그냥 멀리서 보고 마는 걸 한두 사람 끌고 폭포 아래로 내려갔었지요. 그래서 저 '직소포의 하얀 물방울들'을 사진에서 보니 좋으네요. ㅎ -
eunbee2014.07.15 21:15
'다시 직소포에 들다'
글 제목부터가 시예요.
우리 살면서, 다시 들고 싶은 직소포
몇 시절, 몇 군데 (시,공)나 도사리고 있을까요.
그 곳에 다시 드니 차 오르는 감회는 또 얼마가 될런지요.
"섞을 울음이 없는 나는 절창 한 대목도 못 배우고
여전히 차안(此岸)에서나 놀다 나온다"
이런 절창을 부려 놓으시다니....
늘상 피안을 바라보며 헛꿈?꾸는 제겐 화두입니다.ㅎ-
노루2014.07.16 23:34
힘들어 하던 저 시인이 직소(直沼)폭포를 찾은 건 '직소(直訴)'를
떠올리고 였다던데, 그걸 생각하면서 지금 다시 읽어 보니 시에서
어떤 '밝음' '새로워짐' '새로 솟는 힘' 같은 게 느껴져서 좋으네요.
'올려다 보이는 관음봉' 사진이 저 시에 괜찮은 삽화일 것 같단 느낌이
그래서였구나 싶고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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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푸른 솔2014.07.17 14:12
교수님 오랫만에 들렸습니다.
천양희님의 시 즐감하구요
늘 건강하신 님 뵈니 부럽기도 하구요 -
열무김치2014.07.17 22:00
그러고 보면 판소리 대가들이 굳이나 폭포 아래서 득음을 위한 고행을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것 같습니다.
폭포의 우레소리, 그리고 그안을 파고들어 자신의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애끓는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소리꾼의 애절함이 폭포소리로 위안을 받았겠지요.
소음이 때로 조용함을 얻기위한 수단으로 여기는곳이 있다면 저런 폭포가 아닐까 합니다.
천양희 시인의 오랜 표현이 아름답습니다.노루2014.07.18 01:00천양희 시인이 갔을 때가 비 오고 난 후였다고요. 판소리 하는
분들이 폭포를 찾기도 하는군요.
천양희 시인의 저 시를 여기 올려놓은 후 자꾸 읽게 되다 보니,
사람도 자주 만나면서 친해지고 정이 들고그러다가 '그냥 남'이
아닌 사람이 되는 것처럼 시도 그렇다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
헬렌2014.07.25 01:47
이렇게가 아니면 시 한줄 읽지 않는 저한테는 매우 교육적인 포스팅이에요.
또 노루님이 들려주는 시 이야기는 더 재밌거든요.
근데 천양희 시인의 시 아래로 노루님이 지은 '다시 직소포에 들다'가 더 다가와요..
'나를 다시 직소포로 데려간다.'... 이건 시에요 시!
11월..눈내리는 날에도 여전히 반바지 차림이신 노루님. 늘 그 모습 그대로 각인이 되었어요.
그룹에서 이탈해서 저렇게 다섯분이 관음봉에 오르신거라구요?ㅎ 선동자는 당연 노루님이시구요!노루2014.07.25 09:30저기 우리가 서 있는 바위는 직소폭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거기서는 서해가 보여요.
우리가 선두였을 텐데, 저 바위를 지나 다시 산을 오르다가 관음봉 허리쯤에서 그냥 하산 길로
빠진 사람이 저 넷 중에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눈이 내리기 시작했거든요. 저때가
3월 11일이었으니 ...
천양희 시인의 시와 우리 등산 사진을 한 자리에 놓으면 느낌이 좀 새로울 것 같았는데
정말 그래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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