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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쇼의 하이쿠 한 수
    2014. 8. 18. 02:17

    읽고 있는 책 Edward Hirsch, How to Read a Poem: And Fall in Love with Poetry 시 한 편을 읽고 시와 사랑에 빠지는 법 (1999)에 바쇼(Matsuo Basho)와 그의 하이쿠 한 수에 대한 이야기가 반 페이지쯤 나온다. 그 일부를 옮겨본다.

     

    1964년 11월 25일 자정이 좀 지난 시간이다. 죽음이 가까이 온 시인(master)은 제자 돈슈에게 그의 마지막 시를 받아 쓰게 한다. [...] "죽음을 앞두고 하이쿠를 쓸 때가 아니란 걸 안다," 바쇼는 깊은 생각에 잠겨 혼잣말 했다: "하지만 시는 이제 50년 넘은 내 생애를 통해서 언제나 염두에 있었다." 그 시는 때로는 "During Illness"(병 중에)[라는 제목으]로 불린다. 다음은 Robert Hass 의 번역이다.

     

               Sick on a journey

     

               my dreams wander

               the withered fields.

     

     

    인터넷에서 바쇼의 하이쿠 원문을 찾아보았다. 

               

            旅に病ん

           で夢は枯野を

           かけ廻る

            

    일본어는 모르지만 한자의 뜻으로 미루어, 그리고 역시 인터넷에서 우리 말 번역본을 읽어본 바로도, 미국의 계관 시인이었던 로버트 하스의 영역은 직역으로 보이는데, 5-7-5 음절 하이쿠 형태까지 갖추고 참 멋지다. 바쇼는 저 시를 남기고 사흘 후에 세상을 떠났다.

     

    재미로 나도, Robert Hass 의 영역본으로부터, 바쇼의 이 하이쿠를 옮겨 본다. 문맥과 뉴앙스가 달라진 점에서, 의역이라기보다도 그저 시 읽기의 한 가닥이라고나 해야 될 것 같다.

     

                병든 나그네

                꿈은 거닐고 있네

                시들은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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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편지2014.08.18 12:57 

      멋집니다.
      어쩌면 저 하이쿠는 결국 세 편이 되었고,
      세 편 다 좋은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바쇼가 섭섭해했을 수도 있는 말이긴 하지만......

      • 노루2014.08.18 21:39
        일본어로 읽는 원문은 제대로 하아쿠의 멋이 있겠고, Hass 의
        영역은 그냥 자유시 같은 부드러움이 좋은데요.

        그런데 하이쿠나 정형시는 역시 답답한 거 같아요. ㅎ
        (바쇼도 하이쿠 시인으로서의 스트레스를 말한 적이 있는
        걸,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길 가다 몸져 누우니
        마음은 황량한 들판을 헤메누나

        식이 저는 더 좋은 거 같아요. ㅎ ㅎ .
      • 파란편지2014.08.18 23:03 
        길 가다 몸져 누우니
        마음은 황량한 들판을 헤메누나

        좋습니다. 그렇게 누워 있으면 그럴 것 같습니다.
        몸져 누운 건 아니지만 사실은 지금 저 또한 그런 정서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하이쿠를 쓸 때가 아니란 걸 안다."고 한 것은,
        그 한 마디로도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노루2014.08.18 23:27
        혼자 누워 있으면, 혼자가 아니라도 어차피 누운 사람은
        혼자니까,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어쩌면, 혼자라는 쓸쓸한 느낌 대신, 자신도 잊고 그 황량함을
        아름답다고도 느끼며 바라보기도 할 것 같아요.
    • eunbee2014.08.18 18:38 

      병든 나그네
      꿈은 거닐고 있네
      시들은 들판

      어떤 장면이 떠올라요.
      현실적이기도, 비현실적이기도...
      또는 영화의 한 장면같기도 한 장면.

      그리고 슬픔도 스며드네요.
      暮色의 서글픔.

      • 노루2014.08.18 21:54

        나이들수록 나돌아다니기도 하고 활동적인
        게 좋은 거 같아요. 노년에도 활동적일 땐
        안 그럴 텐데, 아파 누우면 이래저래 황량한
        들판을 떠올릴 것 같아요.

    • 열무김치2014.08.22 23:27 

      두 사람의 생 ,그 사이에 피어난 벚꽃이어라

      시를 읽다보면 자꾸만 허무, 황량함이 떠오릅니다.
      일본의 미래가 보이는것 같기도 하고
      일본인들이 자랑 한다는 3대 문화 유산중 하나라는 하이쿠는 한국 사람들에겐 아직도 먼곳에 있는것 같네요.

      • 노루2014.08.23 04:47

        일본에 인명의 피해를 가져올 정도의 쓰나미나 지진은
        없으면 좋겠어요.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웃집과는 애들도 오가며 가깝게 지내는 게 좋고 문화는
        아울러지고 섞이는 게 좋다는 평소 생각인데, 서로에게서
        좋은 점을 배우게도 되고 무엇보다도 각각이 지닌 못된
        점들이 점차 마모되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요.

        사회상을 보여주는 데는 역시 문학만 한 게 없을 텐데,
        하이쿠는 그런 면에선 너무 짧아요. ㅎ

    • 깜이河河2014.08.28 18:06 

      하이쿠 시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 평소보다 말이 많이 줄었어요 그러다 아주 말 안할것 같아요 ㅎㅎㅎ
      바쇼 시를 책으로 한권 써 줬는데
      짧고 강열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 시집입니다

      • 노루2014.08.30 08:49

        ㅎ ㅎ 아주 말 안 할 것 같다고요?
        말이 아주 없는 편이던 어떤 지인 생각이 나네요. 같이
        맥주집에 가서 내가 말이 없으면 계속 침묵 속에서 마시고
        있어야 하니 그것도 참 힘들더라고요.

        '짧고 강열하고 긴 여운을 남기는'시나 글, 좋지요.
        그런데, 자유시에 특별히 잘 맞는 게 우리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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