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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이 나를 기다린다
    2014. 8. 9. 04:24

                                     

                                       산이 나를 기다린다

     

                                                        이생진 (1929 - ) 

     


                   "오늘도 산에 갈래요?"
                   비오는 날, 아내 목소리도 젖었다.
                   "가 봐야지 기다리니까"
                   "누가 기다린다고"
                   "새가 나무가 풀이 꽃이 바위가 비를 맞으며 기다리지"
                   "그것들이 말이나 할 줄 아나요"
                   "천만에, 말이야 당신보다 잘하지"
                   그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 시인데 
                   아내는 아직 나를 모른다

     

     

     

    <덧붙임> 이생진 시인 홈페이지의 '시' 게시판을 여기 <즐겨찾기: 시>에 연결시켰습니다. 최근 시로는 세월호 침몰에 관한 시들이 몇 편 올라와 있네요. 8/11/14.)

     

    이생진 시인의 시에서 느끼는 친근감은 시인을 가까이서 뵌 적이 있어 더하기도 할 거다. 춘천에 있을 땐 주말 오후에 종종, 고전음악 감상실로도 통하는, <까페 바라>에 혼자 가서, 손님이라곤 거의 나뿐이곤 하던 그 시간에,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시곤 했었다. 한 번은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스무 명쯤의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서울 <우이동 시인들> 동인과 춘천 무슨 시 동인의 시인들이었다. <우이 시> 동인의 이생진 시인을 비롯해서 몇 분 시인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시인들과의 두 번째 이런 조우였던 거다. 이전처럼 곧 <시 낭송회>가 시작됐고 이날은 이 분들의 친절한 초청에 기쁘게 응해서 그 뒤풀이 저녁식사에도 따라갔었다. 시인들의 자리에 시인이 아닌 나도 같이 껴서 마신 적이 춘천에서 몇 번 있었다. 그 분위기를 좋아했었다.

     

     

     

                                                                                       *     *     *

     

     

     

    시인이 그런다.

    시인에겐 시를 읊어주려고 산이 기다린다고.

    나도 산이 기다린다.

    동네 마당이 놀러나오는 애들을 기다리듯.

    세상에선 누구 위 아래를 다 싫어하면서

    산에선 조금만 높은 바위에도 오르고픈,

    그 위에 서서 -- 높아서, 탁 트여서, 바닥이 탄탄해서 -- 좋아하는,

    산에선 내 친구처럼 구도자가 되는 대신

    한 마리 사슴처럼 뛰놀고픈,

    나를 산이 기다린다.

    산에 오른 지 오래다.

    나도 산을 기다린다.

     

     

     

                    

     

     

    북한산 비봉을 내려오며, 4/1/2007.

    이날 아래 사진을 찍어준 사람이 저기 보인다, 아래 쪽에 서 있는, 왼쪽에서 두 번째.

     

     

     

     

     

    비봉 위에서. 모자가 바람에 날릴까봐 ...

     

     

     

    --------------------------------------------------------------------

     

    • 늘 푸른 솔2014.08.09 06:07 

      교수님의 추억들!
      넘 멋진 춘천에서의 시인들과 조우......
      그런 인연이라면 누군들 행복하지 않을까요?
      바위 위에 우뚝 서 계시는 모습이
      '명량'의 이순신장군 !!!
      요산요수!
      그래서 산으로 모두 가는가 봅니다.
      저도 한땐 산에 푹 빠졌거던요
      늘 행복하시구요

      • 노루2014.08.10 07:46

        산을 소재로 한 시들을 읽어 보다가 이생진 시인의
        이 시를 만났습니다. 부부의 주고 받는 대화가 은근히
        재밌어서요. 그리고 춘천 시절 생각도 났구요.
        늘 푸른 솔님도 늘 즐거운 일들이 많기를요!

    • eunbee2014.08.09 08:28 

      이생진 시인은 저도 두어 번 뵌적이 있어요.
      혜화동에서 시 낭송회가 있던 때와 지인의 시집 출판 기념 회식자리에서.ㅎ
      소박하고 참으로 인자하신 인상이 제게 남아있어요.
      제주의 풍광들과 우도를 자주 시로 읊으셨지요?
      군 생활을 그곳에서 하셨다던가요?

      산, 새, 꽃...나무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시인의 마음의 귀.

      비봉 위에 서 계시는 교수님을 뵈니, 닉네임이 왜 '노루'인지 짐작이 가요.ㅎㅎ

      • 노루2014.08.10 07:51

        한국 산에 오른 지가 너무 오래서, 땀 흘리고 올라선
        산마루에서의 그 희열이 이젠 실감이 잘 안 날 정도네요. ㅎ
        그런데 저 사진을 봐도 저 날도 하늘이 저럤네요. 오후 2시쯤의
        사진인데요.

    • 송학(松鶴) 이규정2014.08.09 09:46 

      노루님 안녕하세용
      주말 아침에
      산이 나를 기다린다
      좋은글과
      아름다운 산행에 쉬어감에
      감사드리며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노루2014.08.10 07:53
      네, 좋은 주말 보내시기를요.
    • sellad (세래드)2014.08.09 21:33 

      쭉!~뻗은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노루2014.08.10 08:00
      산에선 바위가 안정감도 주고, 특히
      전망 바위 위에 서 있기를 좋아합니다.정복자의 본능 인가요?!ㅎㅎㅎ
      • 노루2014.08.10 08:29

        그저 애들이 놀이터에서 그러듯이요. ㅎ ㅎ

      • sellad (세래드)2014.08.10 08:31 

        ㅎㅎㅎ^^

    • sellad (세래드)2014.08.10 08:23 
    • 파란편지2014.08.11 17:07 

      "오늘도 산에 갈래요?"
      "가 봐야지 기다리니까"
      "누가 기다린다고"
      "새가 나무가 풀이 꽃이 바위가 비를 맞으며 기다리지"
      "그것들이 말이나 할 줄 아나요"
      "천만에, 말이야 당신보다 잘하지"

      이 대화만으로도 멋진 시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의 마무리도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 그들이 말하는 것은 모두 시인데
      - 아내는 아직 나를 모른다

      아래 사진을 찍어주신 저 분이 저 여러 명 중에서 제일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노루2014.08.11 22:40
      대화의 마지막 두 줄도 참 유머러스한데, 역시 마무리가 또 근사하지요?
      대화 전체를 읽으면서 마치 노래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요.
      몇 편 읽은 정진규 시인의 (2000년대의?) '이야기체?' 시보다 더 친근하고
      좋다는 느낌이 저한테는 들어요.

      이생진 시인의 이 시를 여기 올려 놓고 가끔 읽어 보는 게 글 공부로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요. ㅎ

      PC를 바꾸기 전엔 이생진 시인의 홈피에서 거의 매일처럼 쓰시는 시를 올라오는
      대로 읽어보곤 했는데, 위의 대사처럼, 편안하게 쓰여진 느낌을 주면서 은근히 아주
      멋지더군요. 다시 찾아서 <즐겨찾기>에 연결시켜야 겠어요.
      • 노루2014.08.11 22:59

        덧붙임: 지금 이생진 시인의 홈페이지 - 시 - 를 <즐겨찾기: 시>에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최근에 쓰신 시 '마도로스론論 -세월호 침몰'를 재밌게 읽어보다가 왔습니다. 다시
        가서 마저 읽으려고요. ㅎ

        덧붙임: 마저 읽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이야기와 선장 이야기 1, 2, 3 으로 되어 있는 시인데,
        그 마무리가 또 역시 멋지네요.

      • 파란편지2014.08.11 23:20 

        "아내는 아직 나를 모른다"
        투정일까?
        아내는 시인이 아니라면 시인의 눈과 귀를 가지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시인의 길을 보여주는 구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그분의 시를 봐야 하겠습니다. 이생진 시인...... 멋집니다.

      • 파란편지2014.08.11 23:26 

        당장 가서 말씀하신 시를 보고 왔습니다. 물론 즐겨찾을 홈페이지가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열무김치2014.08.12 12:35 

      아내는 아직 나를 모른다면 그 시인은 주말마다 혼자 산에 갔던지 , 새 ,꽃, 나무 ,바람이 속삭이는 말들을 혼자 다 독식을 한 욕심쟁이거나 아내에게 그런 속삭임들을 한번도 말해주지 않은 나쁜 남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아내는 꽃이나 풀 , 나무나 바람결보다 더 섬세하고 겉으론 모른척 해도 들려주면 금방 알아듣기 때문이지요.
      그런 말을 해주는 남편을 철없다고 나무라면서도 속으론 얼마나 고마워 하겠습니까.

      그것들이 말이나 할 줄 아나요?
      천만에, 말이야 당신보다 잘하지..
      그 시인은 글이나 잘 썼지 아내에겐 빵점입니다.

      하하..
      괜히 트집을 부려 봤습니다.
      시속에 담긴뜻이 무궁 합니다.
      산이 들려주는 시 를 들으려 산에 올라야겠습니다.
      이분의 글을 더 찾아 보겠습니다.

      노루2014.08.12 13:50
      그것들이 말이나 할 줄 아나요?
      천만에, 말이야 당신보다 잘하지..

      아내가 시인을 얼르는데 시인은 소년처럼 신이 나서
      댓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부부의 표정도 이리저리 상상해
      보게 되고 재밌어요.

      시인의 부인께서 참 무던한 분이시라는 느낌도 받고요.

      우리 식으론 86세인 시인이 요즘도 자주 시를 쓰시고
      -- 세월호 관련 시만도 너댓 편 -- 홈페이지에도
      올리시니 정말 대단하시지요?
    • 헬렌2014.08.13 03:43 신고

      노루님이 들려주는 춘천에서의 추억이 참 낭만적이에요. 시인들 모임에 시인이 아닌 나도 끼여서 뒷풀이를 갔다는 것도
      재밌고...그래도 저는 노루님이 제일 멋진 시인같은데요?ㅎ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걸 봐도 노루님은 타고난 시인이에요.
      산에 가면 시를 읊어주는 것들이 있어서 참 좋겠어요.
      전 아무생각없이 그냥 올라가는데(너무 힘들어서 생각이란걸 할 수가 없어요ㅎ)

      땀 흘리면서 올라가 바라보는 산 정상의 풍경이 그리우신가봐요.
      산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노루님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거에요. 진짜로 그럴 것 같아요.
      누구보다 산을 사랑하고, 산을 사람이나 신을 대하듯 그렇게 진지하게 대하니 산도 그걸 알거에요^^
      조만간 산에 한번 다녀오셔야겠어요.

      • 노루2014.08.13 12:31
        산에서 시를 듣는 건 이생진 시인이시고요. ㅎ

        춘천의 분위기 좋은 까페나 맥주집에서 혼자 한잔하고 있다 보면
        지역 시인들과 어룰리게 되는 적이 가끔 있었지요. 다른 작가나
        예술인보다 시인들이 유난히 함께 그런데 몰려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아마 작품 낭송 모임이 (그리고 그 뒤풀이가) 잦아서
        그렇겠지요.

        사실 춘천에서의 낭만적인 추억들이 좀 있기는 해요. '로맨스는
        아니지만 로맨틱한'이란 구절을 어디에단가 쓴 적도 한 번 있고요. ㅎ
        그래서 운이 참 좋았다고 ...

    • 호박꽃의 미소2014.08.19 09:53 

      한국에 오셔서
      산행을 함께 하셨어도
      복장은 미국스타일~~ 입니다.

      늘 익숙하게 보아 온 터라,
      휜눈을 배경으로
      늘 익숙하게 보아 온 반바지가 참 시원해 보여서 좋습니다.

      시가 참 깔끔하게 함축된 글이 좋아 보였는데
      노루님이 지으신 마음이겠지요? ㅎㅎㅎ

      저도 요즘은
      산에 오른지가 언제적인가 하는 생각이
      년초에 1월달 찬바람 부는 날
      새벽산행을 한달하곤 ....차츰 잊었는데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많이....ㅠ

      노루2014.08.19 23:24
      찬 바람 부는 1월에 그것도 새벽 산행을
      한 달이나 하셨다구요? 평소엔 또 체육관에서
      근육 만들기도 열심이시잖아요!
      미소님의 늘 활기찬 모습이 그래서 ...

      사월 말 서울 집에 열흘 다녀올 때 하루 아침 잠깐
      뒷산 인왕산에 조금 올랐던 것 말고는 한국 산에
      오른 지는 3년이 넘었네요. 이래저래 가을에 한번
      나가볼 수 있어야 할 텐데 ...
      • 호박꽃의 미소2014.08.20 16:52 

        헬스장 입성은
        최근 일이어요. ㅎㅎㅎ
        겨울엔 산행을 한달 하다가
        피부에 적인 봄날이 되고요...

        서서히 날씨도 점차 더워지니
        실내운동으로 가야지요.
        늘 여름이면
        물놀이 운동이 좋았는데
        다리힘도 부족한지 스피드도 없고요
        너무 체력이 딸려서요.
        근력 부치기에 도전했답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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