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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주문해서 나눠 먹기 Splitting an Order / Ted Kooser 시집시 2015. 2. 28. 09:17
Ted Kooser 의 시집 'Splitting an Order'(2014)를 만나게 되고 그로해서 이 시인을 좀 알게 된 건, 순 우연이다. 오늘따라, 어제까지 이삼일 계속 눈이 내린 후, 해가 나고, 그래서 동네 도서관에 운동 삼아 걸어서 갔다 올 생각을 하고, 거기서는 또 오랜만에 오늘따라 < New Nonfiction > 쪽을 둘러볼 생각이 들고 그래서 마침 표지 그림이 눈에 띈 책을 펴보게 된 거지만, 다 우연이다. 시인의 이름이 낯익다 싶었지만 언제 어디서 봤다 해도 그 또한 우연이었을 테니 말이다.
빌려와서 책 제목의 시를 읽어보니 이 시가 그리는 그림이 표지 그림보다 더 아름답다.
Splitting an Order
I like to watch an old man cutting a sandwich in half,
maybe an ordinary cold roast beef on whole wheat bread,
no pickles or onion, keeping his shaky hands steady
by placing his forearms firm on the edge of the table
and using both hands, the left to hold the sandwich in place,
and the right to cut it surely, corner to corner,
observing his progress through glasses that moments before
he wiped with his napkin, and then to see him lift half
onto the extra plate that he had asked the server to bring,
and then to wait, offering the plate to his wife
while she slowly unrolls her napkin and places her spoon,
her knife and her fork in their proper places,
then smoothes the starched white napkin over her knees
and meets his eyes and holds out both old hands to him.아래는, 번역이라기보다, 그냥 시의 내용을 옮겨본 거다.
하나 주문해서 나눠 먹기
나는 할아버지가 샌드위치를 반으로 자르는 것을
아마도, 피클이나 양파도 안 든, 보통
'
cold roast beef on whole wheat bread'를, 손이 떨지 않게 양쪽 팔뚝을 테이블 가장자리에 붙이고, 조금 전에 내프킨으로 닦은 안경을 통해 쳐다보면서, 왼손으로 샌드위치를 잡고 오른손으로 한쪽 모서리에서 맞은편 모서리로 확실하게 자르는 것을 보는게,
그리고는 그 반을, 따로 가져오게 한, 접시에 얹는 것을,
그리고는 그 접시를 아내에게 권하고서,
그녀가 천천히 내프킨을 펴서 스푼과 나이프와 포크를 제자리에 놓고는
풀먹인 하얀 내프킨을 반듯하게 해서 무릎을 덮고
그리고 그를 쳐다보면서 주름진 두 손을 그에게 내미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는 게 좋다.
시집 뒷 표지에 있는 시인의 사진과, 시 'At a Kitchen Table 부엌 식탁에서'가 둘 다 좋아서 여기 올려 놓는다. 이 시도 역시 그냥 원문이 조금씩, 때로는 미묘하게, 다른 갈래로 읽을 수도 있어서 좋은데, 어쨌든 번역을 해봤다. 맘에도 안 들고 엉성하지만 '임시 번역' 치기로 했다.
시집 뒷 표지.
부엌 식탁에서
한 떼의 이야기들은 아니고,
보통은 아니고,
다만 해질녘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빛 속에
스스로를 창조하면서
조용히, 짝을 지어, 내려앉는
몇몇 이야기들.
그리고 좀처럼 파랑, 초록, 또는 빨강으로
화려하지는 않고, 흙이나 나무처럼, 수수한 깃털의,
소박하고 귀여운 노래를 지닌.
그들의 펼쳐진 날개들로
우리는 우리 식탁을 밝힌다.
저녁에 부부가 식탁에 마주 앉으면, 짝지어 날라와 앉는 새들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또는 가벼운 관점에서) 조용히 한마디씩 주고 받는 중에, 하루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요란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한두 가지 일상의 얘기를 나누는 거겠지만, 그로해서 저녁 식탁이 밝고 따스하다. '소박하고 귀여운 노래'를 누가 누구에게서 듣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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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편지2015.02.28 18:53
아, 멋진 시입니다.
저도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좋기 때문에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런 시라면 고개를 돌릴 사람이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
노루2015.02.28 23:28
저 할머니의 서두르지 않는, 숙녀다운 모습이 보기 좋지요? ㅎ
그걸 뒷받침해주는 듯한 할아버지의 '든든함'도요.
칠십 중반의 노시인이라서 그런지 시집에서 몇 편 우선 읽어본 시 중에 세 편이
벌써 노인들에 관한 시네요. 시집은 여기서는 잘 안 사게 되는데, 저 시인의
퓰리처상 수상 시집인 'Delights and Shadows'(2004)는 사볼 생각이 들어요.
시인의 사진도 보여주는 시집 뒷 표지의 시가 또 좋아서 그 사진을 덧붙였습니다.
그 시 '부엌 테이블에서'는 엉성한 번역이나마 곧 올려볼 생각이고요. -
파란편지2015.03.01 11:15
번역하신 것과 뒷 표지의 원문을 번갈아가며 봤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또 한 편의 시가 그려질 듯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본 시인의 사진을 컴퓨터로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참 재미있고 섬세하고 다정한 노인일 것 같네요.
저런 시를 잘 쓸 수 있는 노인. -
노루2015.03.01 12:48저 시인에 대해서 '정직한'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평한 걸 잠깐 사이에
두 군데서나 읽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통 이야기하는 그런 투로
시를 쓴다고요. 우연이었지만 괜찮은 시인을 알게 됐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특히 시 번역은 엉뚱한 실수로도, 또는 몰라서도, 오역하기 참
쉬운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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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ee2015.04.05 20:36
오늘 TV 채널 <Art&Culture>에서 '책 표지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내용의
유익하고 재미있는 프로를 봤어요. 그것을 보는 동안
자꾸만 교수님 방에서 만나는 책표지 사진들이 떠올랐지요.ㅎ
방송 내용중
죠지 오웰의 '1984'년의 표지(출판 횟수가 많아)가 가장 다양했어요.
이방에서는, 특히 이페이지의 저 사진
'Splitting an Order' 표지 그림은 더욱 좋아서,
다시 와서 보고 있답니다.ㅎ-
노루2015.04.05 22:53
저 시집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게 된 것도, 일반 서가가 아닌
창문 들 사이의 특별한 책장에, 표지가 보이게 진열되어 있어서
였지요.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도 추상적이 아니고 그러면서도 사진이
아니고 그림이어서, 저도 저 표지가 참 맘에 들어요. 언제 도서관
책 세일에서 눈에 띌 것 같은데 ...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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