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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써니' 미용실에서 발견한 김충래 시집
    2024. 4. 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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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니' 미용실에서 이발하게 된 건 처음이고 우연이었다. 그 미용실 책장에서 발견한 김충래 시집 "내 안에 그대 있지만 나는 늘 외롭다"(2001)를 이발 전후에 다 읽고서 시집 표지와 표지 안쪽의 시인 소개 글 (부분), 그리고 시 네 편을 셀폰에 사진으로 담아 왔다. 시인은 (한국, 일본 특유의 등단 제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 시집을 냄으로써 시인이 된 듯하다. 150편쯤의 시가 실려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시는 미완작이다"라는 말을 나는 이해한다. 하지만, 시인들의 시를 두고 -- 특히 시를 써야 한다고 만들어 낸 느낌을 주는 시 중에서 -- 읽어볼 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적도 많다,

     

     

     

    김충래 시집 "내 안에 그대 있지만 나는 늘 외롭다" (2001)

     

    시집 앞표지 안쪽에서

     

     

     

    가져온 네 편의 시 중에 세 편을 여기 올리기로 한다. 전문에 앞서 먼저 각각에서 한 시구를:

     

         이제, 용서로 한을

         덮어가는 아득한 정경

         굽이쳐 흐르는 강은

         되돌아오지 못할 아픈

         역사들을 연신 나르고 있다

     

            ---  "숭화 강변 -- 베트남에서"

     

         잠들 수 없는 생명의 욕구처럼

         그리도 깊이깊이 순결을 보듬고

         목련은 굵은 꽃잎을 뚝뚝 떨구고 있다

     

            ---  "목련"

     

         영혼 속에 샘솟는 기쁨 하나 있어

         날마다 혼자 보는 마음 하늘이어라

     

            ---  "눈을 감으면 언제나 그만한 거리에"

     

     

     

    숭화 강변

    -- 베트남에서

     

     

    역사가, 죽음이 그리고

    삶의 물살이 혼재한

    아픔으로 흐르는 강

    길목엔

    흐르고 거스르는 배들이

    남루한 가난을 나르고

    생존이 바로 전쟁이었던

    눈에는 아직

    눈물 홍건한데

    누구의 고백인지

    강 언덕에 피고 지는

    꽃들이 초록 속에서

    색색으로 재잘댄다

     

    아물지 못한 상처

    잊어버린 아픔

    그마저 모르는 사람들

    저마다의 얼굴로

    다릴 건너지만

    모두는 한데 어울려

    하루를 같이 엮어가야 한다

     

    승리만을 바라며

    지하굴을 지피던

    불굴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용서로 한을

    덮어가는 아득한 정경

    굽이쳐 흐르는 강은

    되돌아오지 못할 아픈

    역사들을 연신 나르고 있다

     

     

    목련

     

     

    겨우내 모진 삶 견디더니

    그 흔한 잎 하나 걸치지 않고

    하이얀 봉오리 벌려 웃고 있구나

     

    순결한 네 앞에 서면

    민망하여라

    겨우내 허무만을 매만지며 가꾼

    이 초라한 모습이

     

    부끄러워라

    겨울 화롯불가에서

    잃어버린 내 순결이

    삶이 짐이 되어 팔아버린 진실들이

     

    봄비 내리는 아침

    어머니 마지막 굽은 손, 그

    부푼 잎 유복자처럼 남기고

    욕심없이 내려앉은 의연한 모습에서

    하늘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순종이

    빗물에 씻겨 하늘로 하늘로 솟는구나

     

    잠들 수 없는 생명의 욕구처럼

    그리도 깊이깊이 순결을 보듬고

    목련은 굵은 꽃잎을 뚝뚝 떨구고 있다

     

     

    눈을 감으면 언제나 그만한 거리에

     

     

    영혼 속에 샘솟는 기쁨 하나 있어

    아무도 닿지 못할 거리만큼에

    고사리 같은 손 흔들며 나를 부르던 건

    다소곳이 머리 숙인 백합일 거야

     

    순백의 얼굴에 짙은 향기 어린

    수줍은 미소는 사랑의 고백일까

    설레는 가슴으로 너를 보노라면

    자꾸만 영원을 넘보는 건 모를 일이야

     

    아파트 양지 바른 곳에 수년 길러 온

    군자란이 예쁜 꽃 피웠지만

    그보단 된서리 악몽 담담히 받으며

    땅을 뚫고 솟아나 꽃대 위에 얹혀진

    네 고결함을 따를 수 있으랴

     

    눈을 감으면 언제나 그만한 거리에

    연민의 맑은 미소 짓는 외로운 백합

    돌아서려 애써도 도로 그 자리

    마음은 고요히 그를 바라고 영혼은

    살며시 그 향에 취해 밤이면 사랑을 앓는다

     

    영혼 속에 샘솟는 기쁨 하나 있어

    날마다 혼자 보는 마음 하늘이어라

     

     

     

     

    건물 2층 미용실 창밖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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