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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이 좋기만 한 계절에짧은 글 2011. 9. 21. 04:27
[안나님 블로그의 글 '사랑은 아프다'에 단 댓글에다 한두 줄 덧붙인 거다.]
이젠, 풋사랑 같고 첫사랑 같은 짝사랑이 좋아요.
연인 같은 친구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좋은,
실은 그녀의 다만 좀 친한 팬이면 좋은, 그래서 대체로
늘 기쁨만 있는 그런 짝사랑이 좋아요.
삶의 이 계절엔, 짝사랑이 좋기만 해서 좋아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요? 무심하게 피어 있는 들꽃을,
그 맑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거늘 (그래,
짝사랑이네), 보고 싶어하고, 보면 행복한 게 사랑이
아니라고요? 젊은이의 모두를 건 몰두하는 사랑이야
아니지만요.
사랑을 느끼는 딱 그 단계에 언제나 있는, 그런 사랑이
이젠 좋아요. 누가 뭐랄 것도 없고 행복하기만 한.
And love comes in at the eye;
사랑은 눈으로 오고;
[ … ]
I look at you, and sigh.
나는 그대를 보네, 한숨쉬면서.
라고, Yeats 는 ‘A Drinking Song' 에서 읊었지만, 그건
젊은이의 특권, 지금 내게 맞는 건
나는 그대를 보네, 더 없이 행복하네.
문득,
나무들의 사랑이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저마다 하늘이나 쳐다보면서
소나무는 참나무를 짝사랑하고
참나무는 단풍나무를 짝사랑하고
노래지도록 서로 껴안은 은행나무에선
투두둑, 은행 떨구는 소리 들리건만.
마로니에. 한림대 교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