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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다 같지는 않다.
입맛은 맛 들이기에 달렸다.
입맛은 혀가 아니라 머리로 바꿀 수도 있다.
나는 내 입맛이 맘에 든다.
단순한 것들을 좋아해서 나를 편하게 해서다.
맛이 단순한 게 아니라, 흔하고 먹기 위한 준비가 간단한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만 자꾸 먹다 보니, 입맛이 오히려 깊어진다.
폭으로 안 되니 스스로 깊이를 만든다.
나는 내 입맛이 맘에 든다.
몸에 좋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대체로 맛있어 한다.
몸에 안 좋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대체로 맛없어 한다.
입맛이 어느 정도 생각을 잘 따라주는 것 같다.
입맛은 의리가 있어서 우리 식생활을 편하게 한다.
(바뀐 식생활 환경에서 어떤 사람은 몹시 힘들어도 하지만.)
거의 매일 저녁 메뉴가, 맛있고 요리가 간단하거나 불필요하고
몸에 좋고 또 흔한 것들 중, 늘 같은 서너 가지인데도, 만족해할
뿐 아니라 갈수록 더 맛있어 하는 내 입맛이 여간 다행이 아니다.
실은 정말 다행인것은 아내의 입맛이, 우리 집 저녁 식사의 핵심
메뉴에서, 내 입맛을 따라와준 거다.
우리 집에서 (오랜 전에 사라진) 김치 노릇을 하는, (냄비 하나로
간단히) 스팀한 브로컬리에 '루이지아나 핫 소스' 친 것을 매일
저녁 변함 없이 맛있어 하는 아내가 기특하다.
,
누가 복잡정교하게 요리해온 음식은 눈에 설거나 그 양념 향에 익숙치
않아선지 맛만 보고 밀어 놓으면서, 얼렸던 대구나 연어 살 토막에
소금만 쳐서 구운 거는 메일 저녁 먹어도 맛있어 하는 아내가 신통하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음식 중에 아내는 안 먹는 것도 물론 많다. 다시
내 입맛으로 돌아가서 몇 예를 들어야겠다.
몸에 좋다는 생각이 맛잇어 하고 좋아하게 만든 것 중 하나는 올리브
기름이다. 십 년도 전이었을 텐데, 딱 처음 두세번만 좀 이상한 맛이다
싶었다. 그 이후론, 빵을 올리브 기름 찍어 먹는 게 내 아침 식사다.
제빵기로 빵을 만들 때도 버터 대신 올리브 기름을 쓴다. 계란도 올리브
기름으로 부친다. 버터는 잊혀졌다.
기름을 잘라낸 고기, 양념 안 한 고기, 잘게 썰지 않은 고기, 그런고기를(더) 맛잇어 하다 보니, 한 끼 일인용 크기의 '뉴욕 스테이크' (두께가
5/4 인치쯤 되는)나 (나비 날개 모양의) butterfly 폭챱을 그대로 물 흘려
씻어서 소금 쳐 오븐에 구우면, 그게 내게는 최고의 고기 요리다.
지글지글 익을 때의 그 '순수한'쇠고기 냄새가 내가 좋아하는 쇠고기 맛이다.
내가 잘 하는 요리 중하나로 꼽으면, 그게 요리 하는 거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고 보니,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더 간단하고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맛있어 하는 사시미라는 '요리'가 생각난다.)
사실 세련된 맛으로 말하면 그냥 먹는 과일 맛 만한 게 있을까 싶다.
이런 얘기, 하는 김에 좀 더 계속해야겠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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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2012.01.22 14:07
마치 수도승처럼 변한 단순한 입맛을 가지고 계시네요.
사실 그런데, 그런 입맛이 더 깊어진다는 말뜻에 이해하게 됩니다.
단순할수록 깊어지는것은 입맛도 마찬가지일테니까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단순하게 생각도 음식도 그렇게 하자면서도
식탐이나 호기심이 많은 저는 아직도 그게 안되어요,
갈수록 식탁은 단촐하게 하자는데두요...-
쇼핑이나 요리나 그 자체가 즐거움이기도 하잖아요.
누구에게나 같은 식이나 같은 정도로는 아나자만요.
책 방에 가서 있는 시간은 좋아하지만, 그로서리(식품점?)
소핑은 한때는 계산하고 나갈 줄이 길면 물건 다시 갖다 놓고
그냥 나와버리기도 했을 정도였지요. 지금은 Self - 계산이니 ...
요리(하기)는 번거로워하면서 근사한 (요리된) 요리는 매우
좋아하면 Unhappy - Happy 거나 Happy - Unhappy ?
요리하기도, 그리고 그 결과는 더 좋아하면 Happy - Happy,
간단하게 준비한 음식이 늘 맛있기만 하면 그것도 Happy - Happy.
그런데, 설거지가, 그 시간이, 주는 평온과 행복도 잘 알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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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이河河2012.01.22 23:42
흥미진진 입니다 계속편 까지 기대되구요 ^*^
몸에 안좋으면 맛없다 스스로 그렇게 하신다니 참 쉽게 생각대로 되는것 같아요
보통사람들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올리브유에 빵 찍어 먹으면 뒷맛이 고소 해요
전 셀러드 쏘스에 올리브기름을 써 봤습니다
노루님~생각이 젤 중요하다는걸 보여주셨습니다
설명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기분 내어보셔요~~~~~-
노루2012.01.23 01:22
올리브유와 식초만으로 드레싱한(무친?) 셀러드는 대체로 좋아들 할
것 같아요. 그것도 번거로워서 오이나 bell pepper 나 셀러리를 적당히
잘라서 그냥, 식사 때보다는 오히려 스넥으로, 먹곤 하지요.
아마 소연님도 읽으셨을 것 같은데,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지역에선,
하루에 올리브유 한 수저 먹으면 아플 일 없다든가, 아무튼 건강에 아주
좋다고 한다고요.
까다롭단 소리 듣기 십상이라, 먹는 얘긴 너무 안 하는 편이 낫겠다
싶지만 하여튼 좀 더 계속해볼 게요.
오늘(일요일)은 미식축구 conference 참피언쉽 게임이 둘 --
AFC(American Football C.)와 NFC(National FC) 각각 -- 있고
또 우리 일요 테니스가 있는 등 재미 있는 일들로 꽉 차있네요.
소연님도 설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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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2012.01.23 00:21
담백한 입맛을 가지셨네요.
지인 한 분이 70년대 초에 미국에 왔는데,
모든 야채는 스팀 쿡을 해서 드신다고요.
물론 김치에 대한 그림움도 없고요.
저도 노루님 만큼은 아니지만, 루이지아나 핫 소쓰만 있으면
대강 먹어낼 수 있지요. 야채를 그렇게 드시면 정말
건강 식단이지요. 저는 김치없이 살 수는 없지만, 김치가
독해서 자주 먹으면 순한 음식이 생각나기도 해요. 요즘은
양배추로 코울슬로를 만들어 먹습니다. 고기랑 잘 어울려요.
제 남편도 복잡한 요리를 싫어하여...제 요리솜씨가 안 느는
이유랍니다.^^-
노루2012.01.23 02:06
김치를 무척 좋아해서, 그야말로 밥과 김치면 됐지만, 평소
배가 좀 편치 않았던 게 김치의 산성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였는지, 하여튼 언제부턴가 (아마 30년 전쯤?) 김치를 안
먹고선 배 아픈 적도 없었던 것 같고 또 뒷맛 생각이 나면서
먹고프지도 않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지내게 됐네요.
몸에 나쁘다고 생각하면 별로 먹고 싶어지지도 않게 되는 게,
스테이크를 맛있어하고 특히 한국에 있을 땐 (여기 집 스테이크가)
생각나곤 했는데도 이젠 거의 안 해 먹게 되요. 그래서 이젠 붉은
고기로 가장 자주 먹는 게 레스토랑의 '양 종아리' 요리가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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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루님 글을 읽고 노루님 식성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드실 것 같은,..
저도 타국생활 하면서 제가 그동안 먹고 살아왔던 음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남편과 아이의 식성이 점점 변하는 것도 보게 되고요.
저 부터도 한국에서 그동안 먹고 사는것에 공들인 시간이 왠지 억울해집니다.
단순히 더더 단순히 먹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근데,, 제가 먹고 자란 혀에 굳어버린
음식의 기억이 저를 조정합니다. 그건 제 의지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연일 샌드위치와 파스타를 먹다보면 어느날은 더이상 한젓가락도 들어가지 않고 계속
뜨끈한 국물이 어른거립니다.
저는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고..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마침 어제 어느 의사의 건강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덜 짜게 한 한식이
최고 건강식이라고 하는 걸 들었지요.
몸에 나쁘다고 알려진 것들 -- 적정량 이상의 소금, 설탕, '나쁜' 기름 (fat) -- 에
대해서 신경 쓸 정도 말고는 먹는 거야 자기 식성 대로 즐겨야 할 거지요.
요리에대한 블로그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저렇게 요리를 하거나 음식 준비를
해야 한다면 정말 힘들겠구나, 참 다행이다, 그러면서 입맛에 대해서 쓰게 됐네요.
사실, 덜 먹어야 할 것 몇 가지, 좀 먹어야 할 것 몇 가지가 있는데, 자꾸 우선
편한대로 날을 넘기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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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어제 어느 의사의 건강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덜 짜게 한 한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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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 of Troy2012.02.04 06:10
참으로 바람직한 노루님의 입맛이
저도 참 맘에 듭니다.-
노루2012.02.05 23:56
ㅎ ㅎ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음식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입맛이 다행이긴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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