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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맛 2
    이런저런 2012. 1. 29. 00:08

    제 맛만으로도 맛있는 채소

     

    그냥 날로 먹거나 또는 간단히 익혀서 먹는 채소의 맛은 또 어떤가. 물론 다 제 맛이

     있다. 그 제 맛이, 처음부터 또는 맛들여서, 좋은 채소들이 내가 즐겨 먹는 것들이다.

    사실은 평소 그런 채소들이나 먹는다. 요리해야 한다는 제약을 싫어하는 내 머리가

    내 입맛을 그렇게 다독인 것도 같다. 날로 먹는 샐러리, 구운 sweet potato (단감자?),

    스팀한 Brussels sprouts, 다 그냥 제 맛이 내 입맛엔 가장 맛있는 것 같다.

    단감자는 케이크 보고 저리 가라 한다.

     

    스팀한 Brussels sprouts (큰 건 골프공 만하지만 대체로 더 작은 양배추)는

     

    스팀한 브로컬리 만큼이나 맛있어 하는 내 요리(? 좀 미안)다. 소금도 안 친

    거와 루이지아나 핫 소스만 친 거 두 가지 다 맛있어서 보통 반 쪽에만 소스를

    치곤 한다. 한국에서 흔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채소 중 하나다.

     

    맛있는 건 가정 음식

     

    레스토랑 음식보다는 역시 가정 음식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던 게 최근에,

    문득 생각이 나서 아주 오랜만에, 연어머리구이를 해 먹으면서였다.

     

    눈 하나씩 가진 두 토막으로 잘라서 포장해 놓은 연어 머리를 둘 사다가 물로

    씻기만 하고 올리브유와 소금 뿌려서 오븐에서 20분을 구웠는데, 크기는 한

    토막이 접시에 꽉 찰 정도, 정말 맛있었다. 어두일미를, 감질나게가 아니라

    아주 넉넉하게, 정말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었다. 춘천 어느 일식집에서 먹은

    연어머리구이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맛있었다. 그 일식집에서는 나처럼

    간단하게만 요리할 수는 없었을 게다.

     

    이 연어머리구이를 먹으면서는, 역시 생선은 사시미보다도 익혀 먹는 게 더

    맛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입맛이 간사하다기 보다 융통성이 있는 거라,

    해줬다. 회를 먹을 때는 회가, 찜을 먹을 때는 찜이 가장 맛있는 게 더 행복한

    거니까.

     

    청국장도 청국장 전문집 것보다 가정식에 가까웠던 대학 구내식당 것이 내겐

    늘, 확실하게, 더 맛있었는데, 길들여진 입맛 탓도 있었겠지만 음식점의 어떤

    요령(know-how)이 내게는 그런 효과를 냈을 거다.

     

    섞어 먹기, 따로 먹기

     

    섞어 먹는 것도 맛있고 따로 먹는 것도 맛있다. 비빔밥도 맛있고 맨 밥도 참

    맛있다. 섞어 먹으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맛은 있지만 각각의 독특한 맛은

    잃는다. 그 반대도 물론이다. 섞어 먹는 게 한 번에 다양하게 먹으니 편리하기도

    하지만 따로 먹으면 한 번에 여러가지를 다 안 먹어도 되는 편리함도 있다.

    따로식이 섞어식보다는 설거지가 심리적으로 덜 부담스럽다.

     

    두부호박된장찌개도 맛있고 몸에 좋으니 자주 해 먹지만, 두부를 4분 간

    마이크로오븐에  익혀서 루이지아나 핫 소스만 쳐서 먹는 것도 맛있고 편해서

    저녁식사 주요리로 종종 먹는다.

     

    지금 여기 집에서는 아무렇게나 먹지만, 춘천에 있을 때는 보통, 밥은 밥

    맛으로, 그리고 입가심으로, 식사 맨 마지막에 따로 먹곤 했었다. 밥만 따로

    먹을 때는 특히, 내 입맛에는,  호슬호슬하고 단 맛이 덜한 long grain 쌀밥이

    맛있다.

     

    전에, 식탁에 마주 앉은 누가 다이어트 방법을 묻기에 밥을 많이 먹을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밥 따로 반찬 따로'가 그런 면에선 좋을 거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짠 반찬과 함께가 아니면 밥도 덜 먹히겠거니와 반찬이 얼마나 짠지도 알게

    돼서 덜 먹거나 덜 짜게 만들게 될 것 같다. 반찬 중에 꼴뚜기젓이 나온 경우를

    상상해 보라.

     

    많이 먹을 필요가 없다

     

    건강한 식생활이, 해 달래서 먹는 거야 어려울 것 없지만 먹을거리를 마련하고

    음식을 만드는 걸 포함하면 그렇게 쉽지는 않다. 될수록 간편하게 해결하고

    싶은데 입맛이 잘 따라주는 것 같다. 단순한 것들이 맛있다.

     

    기본적인 생각은 이렇다. 우선, 최상의 몸 상태를 위해서 그렇게 많이 먹을

    필요가 없다. 끼니가 아닌 하루 단위로 생각한다. 하루에 먹어야 할 건강 식품은

    하바드대학의The Health Eating Pyramid 를 대체로 따른다.

     

    그러니 하루에 생선토막(fillet)구이 '또는' 두부 (담백질), 치즈, 그리고 빵 또는

    밥 또는 감자 (탄수화물), 그리고는 적당히 채소와 과일을 식사로 또는 스넥으로

    먹으면 된다. 식사도 스넥도 산뜻하고 늘 맛있기만 하다. 두부도 없고 생선 토막도

    녹혀 놓지 않았으면, 맥주 안주로도 아주 그만이라 늘 몇 병 준비해 놓는,

    'Herring in Wine Source'(청어를 식초와 와인소스로 절인 것, 춘천에서 몇 번

    찾아보다가 단념)를 꺼내 먹으면 된다. (카나다산 이 청어를 먹을 때마다 참 편한

    세상, 그리고 Sam's 에서 사면 특히 싼 건데도, 참 사치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소식을 하는 편인 것 같다. 한국에서 등산할 때는 늘 내 점심은

    빵과 치즈, 맥주 500cc(큰 캔), 그리고 오렌지나 사과 하나로 정해져 있었고,

    그걸로 되겠냐며 김밥이며 권하는 걸, 배 부르고 몸이 무거운 느낌이 싫어서,

    언제나 사양하곤 했는데, 산에선 보통 내가 일행 중에 가장 팔팔하고 빠르다고들

    했으니 내 점심이 부실했다고 할 순 없겠다.

     

    점심에 외식으로 양 고기를 먹었으면, 저녁 준비하고 식사할 시간에 테니스 치러

    나가야 해도, 안 되면 저녁은 빵과 샐러리와 포도만으로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그냥 홀가분해 한다.


    맛있는 걸 두 배 먹는다고 그 만큼 맛있지는 않다. 미술관에서 그림 보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평균 맛'이 떨어질 거다. "지나침이 지나치지 않음만 못하다."

    꼭 이렇게 생각하면서는 아니지만, 팟럭(potluck) 파티 같은 데서도 가볍게,

    그러나 배고프지는 않게 (배부른 느낌은 금방 알지만 배고플 건, 더구나 뭔가

    재미있다 보면, 모르고 넘어가기 쉬우니) 먹고 나서는 가분하게 맥주나 마시곤

    한다.

     

    하여튼, 먹는 것보다는 빨리 놀러 나가고 싶어하는, 아직은 그런 마음이다.

    입맛 까다롭다는 얘기나 듣기 십상인 이런 걸 왜 쓰기 시작했는지 ....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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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렌2012.01.29 02:02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헬렌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다시 읽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생활하고 계신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고 음식 뿐만 아니라 제 생활 전반에 걸친 거품을 보게 되었어요.

      자제분 식성은 어떤가요? 가족 모두가 노루님 식성과 같은가요?
      다음편을 기다리겠습니다^^

      • 노루2012.01.29 02:24
        그 책 안 읽어 봐도 될까요? ㅎ ㅎ
        게을러서 그저 최소한으로 먹는 문제는 해결됐으면, 하는 식이지요.
        한겨울 테니스 치자는 전화에, 식사 딱 한 입 먹었는데 얼른 수저 놓고
        달려나간 적도 있었지요.

        먹는 얘기 하다 보니 자꾸 더덕더덕 생각이 따라 붙네요.
        지금도 막 'Herring in Wine Source'를 윗글에 덧붙였네요. 소설에서 보니,
        독일 사람들도 간편해서 잘 먹는 것 같던데 영국에서도 그럴 것 같아요.

        아, 참, 애들은 다 뉴욕에 있는데 여기 집에 오면 좀 복잡한 서양식 요리를
        하기도 하지요.대학 들어가면서부터 다들 집을 떠났으니 식성이 제가끔인
        거 같아요.
      • 헬렌2012.01.29 02:42 

        지금 약간 느린 실시간 채팅 입니다ㅎㅎ 사람이 다 각각인가 봅니다.
        저는 게을러서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사는게 바로 '청소'에요.
        그게 먹는거면 얼마나 좋았을까.. 살도 안찌고..
        먹던 밥을 놓고 테니스 치러 가셨다니...저로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ㅎㅎ

      • 노루2012.01.29 03:28

        여긴 지금 오전 11시 반이 되 오는데, 거긴 저녁이겠네요.
        청소에 관해선, '어차피 아주 깨끗할 수는 없다' ㅎ ㅎ .
        건강하고 즐겁게 살기 메뉴가 어디 한두 가지 뿐인가요.

    • 깜이河河2012.01.30 11:30 

      노루님 블로그를 만나게 되서 ..내심 후훗~ 난 복있는 사람이야 라고 신나합니다
      음식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지요
      요건 요렇게 조건 조렇게 ^^*
      접시는 어떤걸 쓸까..벌써 행복해 지네요

      된장찌게 하는 날은 약간 보리섞어 밥을 하고
      하얀밥 할 때는 어리굴젖과 들기름으로 구운 김이 먹고 싶고
      아무리 몸에 좋다해도 이것저것 섞은 시커먼 잡곡밥을 싫어하고
      비빕밥도 좋아하지 않구요
      나물에 각자 향이 있는데 도무지 다 섞어서 ..
      비빕밥에 오묘한 맛을 잘 모르느냐 하지만 단순해서 그런지 아직 잘 몰라요

      한달 넘게 외국 나가도 그쪽음식에 적응 잘 합니다ㅎ
      조상이 서양사람 이었는지도 모르지요 ㅎㅎㅎ
      아침 먹어야겠습니다 먹는이야기에 출출한데요~

      • 노루2012.01.31 00:10
        소연님 블로그에서 읽은 릴케의 시 '존재의 이유' 한 구절을
        속으로 다시 읊어봅니다. 살짝 바꾸어 보기도 하고요.

        그저 사랑하면 되는 것
        단순하게 절실하게
        사람도 책도 운동도 예술도
        그리고 산도
        그리고 음식도
        아, 그렇지, 일도 물론

        '그 수첩' 속엔 또 어떤 보석 같은 시들이 숨겨져 있을까,
        밤이 하얘지는 날이라야 그 빛을 볼 수 있는 건가,
        호기심과 기대로 더욱 즐거웠지요. ㅎ ㅎ

    • 안나2012.01.31 15:11 

      단순하게 사는것에, 저는 나이들수록
      좀 적게 먹고, 단순하게 먹고, 그리고 먹는것에 쓰는 열정을
      다른곳에 쓰자고 많이 말한답니다.
      그런데, 워낙 먹성이 좋은 식구들과 있으니...
      그리고 아직도 한국의 맛을 그리워하는지라, 쉽진 않네요.

      그래도, 우리 부부는 점점 단순하고 경건(?)하게 먹자고 합니다.
      노루님 말씀이 많은 생각을 주는 아침입니다.

      • 노루2012.02.01 00:26
        그저, 좀 손 가는 음식 만들기나 나중 설거지를 싫어하는
        사람이 그렇게 안 하고도 맛있게 먹으면서 살 수 있어서
        다행히 생각한다는 걸 쓴 겁니다.

        다 좋아하는 맛있는 요리를 직접 요리해서 풍성한
        밥상을 둘러싸고 온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
        얼마나 좋은가요. 요리 잘 하는 것, 큰 재능이고 특히
        가족에게 좋은 선물이고 기쁨이지요.
    • 호박꽃의 미소2012.01.31 16:41 

      나이들수록 소식을 하고
      식탐을 금하라고 하는데도
      울 낭군은 아직도 짜장면 곱배기를....?!

      늘 외식을 즐기려고...반면에,
      간단, 단순, 단백하게 식사하기를 원하는 저랑 많이 달라서...
      서로 늘 티격거리는데요.

      아이들 어릴적
      소풍이나 운동회에 가도
      한상 가득 차려온듯한 먹거리에 놀란적이 한두번이 아니라
      저랑...코드가 맞나 봐요.ㅎㅎㅎ

      • 노루2012.02.01 00:59
        음식이든 운동이든 무슨 놀이든 건강에나 조금 신경 쓰면서
        좋아히는 건 맘껏 즐겨도 되는 것 아닌가요. ㅎ ㅎ

        코드, 하니까 '93년 여름 생각이 나는데, 스텐포드대학 앞
        거리에서 점심으로 아내와 애들은 증국 음식점을 가고
        싶어하고 나는 거기 보이는 근사한 서양(프렌치?) 레스토랑
        가고 싶어하고, 그래서 서점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갈라져
        갔지요. 그 동네는 그날만 보고 떠나야 했기에 ....


    • jamie2012.02.01 01:27 

      저도 새삼스럽게 건강식 피라미드를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 놓았답니다. 제가 습관적으로 밥을
      너무 많이 먹는구나...깨닫게 되네요.
      저도 연어 스테이크나 필레보다는 저런 연어머리가
      더 맛있는데, 제 동네 수퍼에서는 팔지 않아요.
      연어 살 발라내고 찌끄러기 살만 담아 파는 것이
      더 맛있어서, 혹 눈에 띄면 사온답니다. 기름이 살짝
      깔린게, 정말 일미거든요.

      • 노루2012.02.01 02:45
        '건강식 피라미드' 그렇게 부르면 되는 걸 ....
        연어 기름이 또 몸에 좋다잖아요, 오메가3 ...
        필레도 연어는 맛있는데다가 하여튼 손질할 게
        없는 게 좋아서요. Orange Roughy 를 우리
        집에선 좋아해서 저녁엔 늘 그 필레가 주접시였는데
        이젠 샘스에도 코스코에도 안 나오더군요.
        대구보다 어떻게 더 맛있었는지도 잊었네요.
    • Helen of Troy2012.02.04 06:12 

      저도 나이가 들면서
      양념맛보다는
      최소한의 양념만 넣고
      음식이 제각기 지닌 맛을 즐기는 성향으로 가는 것 같아요.

      뭐니뭐니해도
      골고루 소식을 하면 제일 바람직하겠지요.

      • 노루2012.02.06 00:32

        소식하는 게 좋다고들 하는 것은 그걸로 충분하다는
        이야기겠지요. 보통은, 밥이나 고기를 습관처럼, 이
        정도는 먹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많이 먹게 되는 것
        같아요.

        소식하는 사람들은 아마, 식후의 포만감보다는
        '안 먹은 것 같은 산뜻한 느낌'을 더 좋아하겠지요.
        저도 그 가뿐한 기분 때문에 외식으로는 일식집의
        사시미 디너를 생각하는 적이 많지요.

    • 숲지기2017.04.18 02:01

      구구절절이 옳으신 말씀 같습니다.
      시간 많을 때 천천히 메모를 하면서 읽어야 겠습니다.

      노루2017.04.18 04:24
      지금 다시 읽어보니, 한 번 쓴 걸 다시 잘 안 읽어보고
      그냥 올렸던 것 같아요. 이러나 저러나 저렇게 길게 쓸
      여유가 그땐 있었구나, 싶네요. ㅎ
      • 숲지기2017.04.18 04:46

        벌써 5년 전에 쓰셨군요.
        글에 쓰신 식습관을 그대로 유지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고구마와 청어 연어를 저도 참 좋아하고 자주 먹습니다.
        의외로 비슷하신 식성에 반가움마저 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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