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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이야기 3 : 진짜 대어를 낚은 기분
    책 읽는 즐거움 2012. 2. 15. 03:30


    목요일, 2/9/12


    동네 도서관(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Koelbel Library)에 들어서면 좌우로 그렇게

    넓지 않은 라운지가 있다. 오른쪽 라운지가 Friendly Again Used Book Store 겸 Stirrings

    커피숍 이다. 도서관에 들르면 보통 곧장 그리로 가서, 조금 여유 있을 땐 커피도 마시면서,

    책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될수록 한 권만 골라서 사들고 나온다. 책값은

    특별한 책을 빼고는 두꺼운 표지 책(hardcover)은 4불, 나머지는 3불씩이다. 


    Used Book Store 라고는 해도, 오래 된 책조차, 다 새 책이거나 거의 새 책처럼 보인다.

    근간의 책들도 많다. 책장에서, Classics(고전), Nonfiction(비소설), Fiction(소설)이라고

    표시 되어 있는 부분을 차례로 살펴보곤 한다. 학교의 독서 목록에 오를 책들이 '고전' 쪽에

    있다. 미국 작가로는, 현역 중 아마 가장 작품이 많은 편에 속할 Joyce Carol Oates 의

    소설은 '소설'에, 삼 년 전에 작고한 John Updike 의 소설은 '고전'에 각각 한 권씩 있는

    것을 봤다.


    내가 사먹는 한 파운드 빵 한 덩어리 값인데도, 망서리다가 놓친 책들도 많다. 지난 주엔

    니체의 Beyond Good and Evil 이 그 다음 날 가보니 사라졌다.


    열흘 전엔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가까이 두고 싶어서 춘천까지 가져갔던 헤밍웨이의

    단편집이 2년 전 춘천에서 이리로 오는 도중 사라졌다. 그 책 생각이 난 게 'eunbee' 님

    블로그의 쿠바 아바나 여행기에서 헤밍웨이 이야기를 읽고서다. 그 다음 날 가서 '고전'

    쪽을 보는데 첫눈에 들어온 두 책 중 하나가 The Complete Short Stories of  Ernest 

    Hemingway, The Finca Vigia Ed., 이럴 수가! 잃어버린 책보다 더 'complete' 하고 글자도

    더 크다. 집에 오자 마자 우선 반가운 마음에 TheSnows of Kilimanjaro 를 읽기 시작했다.


    정말 기분 좋은 일은 오늘 생겼다. 집에 책이 너무 빨리 늘고 있고 읽을 책이 너무 많이

    밀려 있어서 요새는 도서관 들르기를 좀 자제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정말 좋은 책 아니면

    안 사면 되지 하면서, 하여튼 도서관으로 갔다. 그런데 눈에 띈 책! Arnold Toynbee,

    A Study of History : The First Abridged one-Volume Edition (1972). 토인비와 Jane

    Caplan 이 토인비의 A Study of History  (역사연구)를 한 권으로 축약한 책이다.


    테이블에 갖다 놓고 (제법 무거운 책이다), 겉 표지 안 쪽을 읽어본다. <역사연구>에

    대해서, 그 책 읽기는 "섬세하고 비할바 없고 거의 끝없는 즐거움"을 준다고 쓴 사람과 그

    책은 "이 세기에 홀로 우뚝하다"고 말한 이가 인용되어 있다.


    원본은 열두 권으로 되어 있고 7,000 페이지가 넘는단다. 궁금해 하긴 했던 것 같은데,

    그러고는 잊고 있었던 책이다. 지금의 내겐 원본보다 축약본이 더, 아니, 딱 맞는 것 같다.


    토인비의 이라면 '읽는 즐거움을 주는 문체'에 대한 신뢰가 간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Greek Civilization And Character 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다. 삶을 즐기기 위해

    애를 안 낳으려는 풍조가 있었던 한 도시국가가 결국 그 때문에 망했다는 걸 읽으면서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을 떠올린 것도 그 책에서 였다.


    진짜 대어를 낚은 기분이다. 평소 낚시는 안 하지만 딱 한 번, 하룻밤에 내 팔뚝보다 큰

    줄무늬 배스(striped bass)를 다섯 마리나 낚아본 적이 있어서 그 기분을 안다. 순간적인

    기분은 그때가 더 좋았을 것 같긴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낚시에서 그런 일은 내겐

    기적이었으니. 그러나 토인비의 <역사연구> 축약본은 읽을 때마다 그 기분이 될 거다.


    대어가 정말 맛도 좋아야 할텐데. 집에 와서 읽어본 본문의 첫 페이지는 역시 기대한

    대로다.


    그런데, 언제 다 읽지? 한 권이라지만 576 페이지에 작은 글씨로 두 단으로 나뉘어 빽빽하게

    쓰여 있다. 상당히 오랫동안 즐길 수는 있겠다. 그래도 빨리 읽어버려야지, 조금이라도 눈이

    더 나빠지기 전에.


    참, "art finally exorcized its Hellenic ghost" 라는 설명과 함께 한 페이지에 보여주는

    피카소의 그림 Woman with s Fan 만 해도 4불 책값은 한다는 생각이다.


    만남에 앞서 만남의 기대로 즐거운 것만도 좋은 거다.






                                                                                                       

                                                                                                   Picasso, Woman with a Fan.




    Koelbel Library




    Friends Again Used Book Store / Stirrings 커피숍 (위, 아래)











    도서관 주차장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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