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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nstromer 의 시 '1979년 3월에'
    2012. 12. 25. 03:02

     

    단어들을, 말은 아닌 단어들을 지껄이는 이들이 지겨워

    눈 덮인 섬으로 간다.

     

    황야에는 단어가 없다.

    사방이 백지다.

     

    아, 여기 눈 위에 한 줄 사슴이 말을 남겼구나.

    단어는 없는 말을.

     

     

    [시집 'Tomas Transtromer, The Deleted World, Robin Robertson 영역, 2006'에

    실린 시 'From March 1979' 을 번역해 봤다.]

     

     

     

     

    친구를 통해 새 친구를 만나듯, 책을 통해 새 책을 만난다.

    올해 National Book Award (Fiction) 수상 작가 Louise Erdrich  책을 읽으면서

    전에 같은  상을 받은 Ha Jin 이 다시 생각나서 그의 소설 War Trash 를 읽게 되고,

    그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면서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Mo Yan 이 떠올라서 그의

    소설을 하나 예약하게 되고, 어제 Mo Yan 의 'Shifu, You'll Do Anything For A Lough'

    빌려오면서, 문득 또 생각이 나서,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Tomas Transtromer

    시집 'The Deleted World'(Robin Robertson 영역, 2011년 판) 을 함께 빌려왔다. 

     

    번역시를 읽는 것은, 말하자면, 앙꼬 빠진 앙꼬빵을 먹는 거란 생각이 든다. 시를

    시답게 만드는 앙꼬는 음악성일 테니 말이다. 스웨덴어(?) 원본과 영역본이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에 나란히 있는 이 시집을 보면서, 정말 그렇구나, 했다. 위의 시

    원본에서는, 둘째와 세째, 그리고 다섯째와 여섯째, 줄이 각각 'on'('-on') 과 'ord'

    (스웨덴어로 word?)로 끝난다.

     

    이 시집의 시 중에 우리말로 번역된 게 있나 '구글'해보니, 김영찬 시인 번역의 '부부'

    한 편이 찾아진다.  뉴욕타임즈에 세 연 중 둘째 연이 소개된 걸 작년(10월 7일)에

    내가 번역해서 여기 블로그에 올렸던 생각이 났다. 둘째 연을 서로 비교해 보니 정말

    다르다. 김영찬 시인도 영역을 번역한 것 같았는데, 내가 본 영역이 아니었을 것 같다.

    즐길 수 있는 번역시는 아무래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하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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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nbee2012.12.25 10:47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에세이나 한 권의 소설이 주는 감동을 넘어 서요.
      '단어는 없는 말을' 듣게 되는 경외스런 자연처럼요.

      위의 시처럼 아름다운 시를 만나다니...
      교수님, 고맙습니당~

      메리 크리스마스!

      • 노루2012.12.25 23:47

        삶에 대한 첫 인상을 듣는 것도 좋지만, 한참 살아본 사람이
        삶을 말하는 게 더 듣고 싶어지곤 해요. 올해 81세일 토마스
        트랜스트뢰머의 시를 그래서 더 읽어보고 싶었지요.

        올핸, 한국도 여기도 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네요.
        밤새 리던 눈이 조금 전, 크리스마스 새벽에, 멈췄네요.
        나가 보니 앞뒤 뜰에 토끼의 '언어'가 보이네요. 뒤뜰에는
        여우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요.

        연말 즐겁게 지내시기를요!

      • eunbee2012.12.27 10:47 

        누군가의 '언어'가 놓여진 사진, 참 좋아요.
        고요한 화이트 크리스마스.

      • 노루2012.12.27 23:22
        사진 없이 제목만 보이면 좀 허전한 느낌을 줘요, 이제는.
        그래서 얼른 뜰로 나가서 한 장. ㅎ ㅎ
      • eunbee2012.12.27 23:50 

        고맙습니다.
        앞 뒷뜰 사진 자주 보고 싶어욤~^*^

    • 깜이河河2012.12.26 08:59 

      여기저기 온통 하얀세상이예요
      하루라도 허물을 덮고 싶은가봐요

      사진도 글처럼 간결한데 많은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말이 아닌 단어들이 지겨워....라는 짦은글이 자꾸 마음에 남아요

      쉽게 접하지 못하는 시와 책이야기를 유익하게 읽고 갑니다
      어려운 공부시간 같습니다 ^^
      열번 듣고 열번 이상 읽으면 될라나요?

      열심히 책보던 오빠는 밥먹으라 불러도 못들어요
      배 안고픈가봐
      안먹을라나봐...하면 엄마가 그방으로 다시 가시던 생각이 납니다
      종종 이방에서 어릴적 그 분위기를 느껴요....

      • 노루2012.12.27 01:02

        영화가 사진이라면 책은 그림이랄까, 책에 더 끌려요. 도서관에서
        저 시집을 빌려오면서 또 사들고 온, 4불짜리 제본도 고전다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Kidnapped' 를 우선 다 읽었는데,
        TV 영화 화면에서 보여주고 있는 리얼한 장면이나 경치보다,
        소설에 건조체로 묘사된 스코트랜드의 풍광이 더 인상적이고
        재미를 느끼게 해줘요.

        우리 집은, 케이블이나 접시가 아닌, 일반 TV 인데도 하루 종일
        영화만 보여주는 채널이 둘 이상이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집에서 책 읽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 헬렌2012.12.31 06:05 

      말로, 언어는 없고 말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지겨워
      눈 덮인 섬을 향한다.

      야성은 말이 없다.
      쓰여지지 않은 페이지들이 사방팔방 펼쳐져 있다!

      눈 속에 순록의 발자국을 만난다.
      언어, 말없는 언어.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스웨덴 시인 Tomas Transtromer로 검색했더니
      '1979년 3월에'시를 저렇게 번역해 놓은 게 있어서.. 노루님이 번역해 놓은거를 이해하는데 참고하려고 적었어요.
      단어, 말이 아닌 단어로 지껄이는 사람들이 지겨워 눈덮인 섬으로 간다..
      이 안에는 어떤 비유와 은유가 숨어 있을까요? 말이 아닌 단어로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들을 피해 눈덮인 섬으로 간다고 했는데 제목은 봄을 상징하는 3월이네요.
      알 듯 모를 듯...시인의 속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저는 그게 늘 고민이에요ㅎ
      번역시를 읽는 것은 앙꼬 빠진 앙꼬빵을 먹는 것 같다는 표현에 웃음이ㅎ
      저는 앙꼬를 안좋아해서 앙꼬 빠진 앙꼬빵을 더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어쩜 시와 딱 들어맞는 사진을 찍으셨을까요? 눈 위를 걸어간 언어가 토끼의 언어인가요?ㅎ

      • 노루2012.12.31 10:46

        스웨덴어를 직접 번역한 게 아니고 영역본을 번역한 거라면 아마 같은 영역본이었을 것
        같아요. 내가 본 영역본과 비교하면, "쓰여지지 않은 페이지들 ...," 은 정확한 직역이네요,
        (마지막 연도 '아,'가 원래 없는데, 그냥 만남보다 기대치 않은 발견 같은 거였기에 망서리다
        붙였어요.) 'wilderness'를 '야성'으로 번역한 것도 괜찮네요. 'wilderness'가 시인이 그
        섬의 자연을 보고 말한 걸 텐데 마땅한 우리 단어가 아직도 생각이 안 나요. 그리고 스웨덴어
        원문은 세 연으로 나뉘어 있지 않고 그냥 여섯 줄이더군요.

        사실은 제목이 아직도 좀 .... 'From March 1979'이니, 시는 나중에 쓴 거라고 생각되는데
        '1979년 3월에'가 그 느낌을 잘 안 주는 것 같아요. 3월에 눈 덮인 경치는, 여기서도 그렇고
        스웨덴에선 더 이상하지 않을 것 같네요.

        요 위에 댓글에도 썼지만, 사진이 없는 게 썰렁해 보여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그림도 없고
        해서, 그냥 뜰로 나가서 ... ㅎ ㅎ

        영역본을 함께 올릴까 하다가 사실 귀찮아서 말았는데, 어제 시집과 Mo Yan 단편집을 다
        반납했네요.

      • 헬렌2012.12.31 23:24 

        저에겐 영역본이나 스웨덴어나 똑같아서..ㅎㅎ
        제가 시에 대해서 뭘 알겠어요.. 알지도 못하면서 시에 대해서 제가 이런저런 얘기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이 아닌 단어로 지껄이는 거랑 똑같은 일이에요. 그러니 시인이 눈 덮인 섬으로 향하는거구요^^
        그래도 노루님께서 이렇게 하나씩 올려주시면 관심이 가져요.
        노루님은 이걸 어떻게 보실까..하고 짐작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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