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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은 하늘보다 넓다
    2012. 3. 16. 00:52

     

     

     

     

     

     

    DW

     

     

     

     

     

    글 읽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요즘 뇌에 관한 책 한두 권과 에세이

    한두 편쯤은 읽었기 쉽다. 어쩌다가 나는 철학자가 최근에 쓴 책까지

    읽어 보다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도서관에 반납하고 말기도 했다.

     

    뇌에 대해 아주 잘 쓴 글 중 하나로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생각 난다.

    '뇌 -- 하늘보다 넓다' The Brain -- is wider than the Sky 란 시다.

     

     

               The Brain -- is wider than the Sky

     

                                  Emily Dickinson

     

     

         The Brain -- is wider than the Sky --

         For --put them side by side --

         The one the other will contain

         With ease -- and you -- beside --

     

         The Brain is deeper than the sea --

         For -- hold them -- Blue to Blue --

         The one the other will absorb --

         As Sponges -- Buckets -- do --

     

         The Brain is just the weight of God --

         For --Heft them -- Pound for Pound --

         And they will differ -- if they do --

         As Syllable from Sound --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면 잘 지은 석조건물이 나타나듯 그렇게 첫 두

    연 다음에 만나는 셋째 연에서 시인은 말한다.

     

    뇌는 정확히 신의 무게야.

    왜냐면, 무게를 달아봐. 이쪽으로 한 근이면 저쪽으로도 한 근이야.

    그리고 그들은, 다르다면, 소리와 음절이 다르듯 다를 거야.

     

    여러 각도로 절묘하다. 무게와 Pound, 소리와 음절, Pound 와 Sound,

    무게와 소리.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뇌와 신이 소리와 음절로 다르다면, 신은 소리? 음절? ("태초에 말이

    있었으니 ...") 또는, 다를 때마다 그때그때 한 쪽이 음절이면 다른 쪽은

    소리? 이렇게도 저렇게도 다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무게'가 이 셋째 연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 같다. "Pound for Pound"

    뇌와 신이 같은 무게라고 까지는 할 수 있지만, 시적 함축성을 떠나서도,

    뇌와 신에 대해서 말할 때는 조심스럽게 모호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시에서 넓이, 깊이, 색깔(빛), 무게, 소리 같은 단어들에서, 한때 물리학

    책을 조금 읽은 나로선, 어절 수 없이 물리학적 개념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재미있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뇌(마음)에 대한 여러 가지는 우선은 그냥

    생각의 실마리로 남겨 둬야 겠다.

     

     

                               ~ ~ ~     ~ ~ ~      ~ ~ ~

     

     

    디킨슨의 시를 읽고 나니, 내가 언젠가 쓴 짧은 글이 생각 났다. 그

    글을 쓰면서 머리 속에 하늘을 그렸던 기억 때문일 게다.

     

    주간지 학보에는 편집위원회에서 자유 제목으로 글을 청탁해서 싣는

    고상한 이름의 칼럼이 하나 있다. 아는 학보사 편집위원 여학생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 결국은, 약속 날자 전 날, 테니스 치고

    맥주도 마시고 밤에 office 에 들어와서 그 칼럼을 시작해서 끝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스트레스 받으면서 글이 써질 리 없고 시간은 가고. 그러다 번쩍,

    시인이기도 한 동료 한 분에게서 그날 이메일로 어느 시인의 시를

    한 편 받은 생각이 났다. 평소 대로 그 시에 대한 답글 몇 줄은 금방

    쓸 수 있을 터였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쓴 그 답글을 이메일로

    학보사에 보내고, 들어와서 잘 잤다.

     

    다음 주에 나온 학보를 보니, 그 여학생이 시가 실리게 됐다고 신이

    나서 열심히 찾아 넣은 삽화 덕에, 새가 나는 하늘 배경의 나무 사진과

    함께 한 폭의 멋진 '시화' 칼럼이 되어 있었다. 그 품위 있는 칼럼에

    시나 시 같은 몇 줄 글이 실린 적은 아직도 그때가 유일했을 거다.

    아래가 그 칼럼 글이다.

     

     

     

                    그리움의 아득한 그만큼만

     

     

    눈 맑은 사람 못 잊는 천년 사랑*

    참 아름답두만

     

    내 한 번도 영원을

    말한 적 없네

     

    그리움의 아득한

    그만큼만 이라네

     

    그러고 보니 영원을

    탐한 적도 없었네

     

    높은 나무들과 바위 사이를 나는

    그저 한 마리 작은 새

     

    부드러운 시공간 4차원을 아는가?

    그리움의 가을 하늘

    겨울 하늘 봄 하늘을 새처럼 난다네

    어제와 내일을 새처럼 난다네

     

    그대와, 그대와, 또 그대가

    다가오고 사라지고 마주 보네

     

    둥그렇게 선 나무들 사이에서

    푸른 하늘을 보네

     

    그리움의 아득한

    그만큼만이라네

     

    * 정일근의 시 '감지의 사랑 - 경주 남산'을 읽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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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nbee2012.03.16 20:43 

      물리학을 전공하셨다는 글은 앞에서 오래전에 읽었으나(어느분과의 답글에서)
      늘 영문학을 하시는 분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대와, 그대와, 또 그대가
      다가오고 사라지고 마주 보네'

      너무도 아득해서
      '그리움의 아득한 그만큼만'이라고 말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네요.

      영원을 말하지 않아도 절로 절로 영원으로 스며드네요.
      언어에 맡기운 순리와 달관같이 보이는 순종*이
      천년사랑보다 짙게 울려오는 시를 오늘 읽었습니다.

      정제된 감성으로, 다듬으며 살아야 되는데...
      그것이 또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ㅠ

      *섭리에 대한 순종이라 할까요. 우주삼라만상의 이치에 대한 순종이라할까요.ㅎ

      • 노루2012.03.16 23:08
        물리학 책을 조금 읽은 적이 있지요. 전공 아니고요.
        고쳤야 겠어요.

        자연스레 영원을 생각하고 말하는 뇌/사람이 있고
        적어도 잘 그러지 못하거나 않는 뇌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에밀리 디킨슨의 저 시가 시로도 정말 잘 쓴 시라는
        생각이 들지만 뇌에 대한 통찰에서도 위에 얘기한 어느
        철학자의 책보다 비교가 안 되는 깊이가 있다고 생각되요.
        그녀의 시 'IF' 와 이 시를 함께 생각해 보니 더 알아보고
        싶어지고요.

      • eunbee2012.04.02 01:00 

        블로그 세상을 며칠 비워두었다가 다시 돌아와도, 노루님 댁 블방엔 포스팅이 없네요.
        건강하시죠?
        우리네 삶은 소소한 바람이 일어 다양함을 만들어내는가 봐요.
        파리의 사나흘을 바람속에서 보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따스한 봄날이시길 기원합니다.

      • 노루2012.04.02 23:56
        요샌 매일 오후나 오전 하나는 사실상 테니스에 주다 보니
        별다른 일이 생길 수가 없네요. 둘 다 많이 뛰고, 한 세트가
        한 시간 이상, 그러니까 타이 브레이크까지, 가는 적도 많은
        아주 재미있는 우리 단식 게임에 둘 다 더없이 만족해 하고
        있지요. 잠도 곤하게 자곤 하는 게, 오늘 아침엔 해 뜬 다음에
        눈이 떠졌네요.
    • jamie2012.03.17 00:08 

      시평이...하나의 시가 된,
      노루님은 시인이시네요.

      뇌의 무게가 신의 무게만큼이라면...
      노루님 말씀대로, 생각해볼게 많은
      시 구절이군요.

      • 노루2012.03.17 03:00

        에밀리 디킨스는 Seminary 에서 일 년 공부하다
        그만 뒀다네요. 신앙 여부를 떠나서 '뇌가 창조한
        신'도 생각했으려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 안나2012.03.17 14:29 

      뇌 라는것이 사람의 영혼이 되기도 하니까,
      그 머리속이 그리는것이 세상이기도 세상이상이도 하니까,
      그럴만도 하다 싶은 싯귀네요.
      그런 시를 쓰기도 했구나...감상을 했습니다.

      거기에 저는 밑에 노루님의 답시가 더 매력적인데요.
      편하게 이메일 답을 저리 쓰셨다니...시인 같으세요.

      • 노루2012.03.17 23:45

        뇌에 대한 또 다른 그녀의 시에서도 마음이나 영혼이란 단어 대신
        뇌라고 한 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던데 그럴(지적할)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직도 심리학이 뇌에 관한 학문의 하나인 것에
        새삼스러워 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아서요.

        "뇌는 바다보다 깊다" 고 했을 때, 에밀리 디킨슨이 'deep time'
        (성경이 말하는 몇 천 년의 시간이 아니라 지질학에서 말하는
        몇 십억 년에 걸치는 시간)을 떠올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가 deep time 개념이 나온 지 반 세기 안팍이었을
        테니까요.

        그 칼럼이 보통은 제법 긴 글이 실리는 데라, 그날 밤은 일부러
        편한 마음으로, 좀 수다스런 기분으로, 써지는 대로, 쓰려고 했을
        거예요..

    • 헬렌2012.03.18 01:24 

      하늘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고, 신의 질량만큼 무거운 사람의 마음(뇌)가 어찌보면 이 우주 섭리에서
      모래알 보다 작은 미미한 존재라는 것이 대조적입니다. 노루님을 통해서 '감지의 사랑' 이라는 시도 찾아 보게 되었어요. 저는 '시'가 참 어렵습니다. 뭐라고 댓글을 달면 무식이 드러날까 걱정이 되어 오늘은 노루님 안부 확인하고 휘이익~

      • 노루2012.03.18 05:24

        '감지의 사랑'을 찾아 읽어 보셨네요. 나는 그때 이메일로 읽고는 다시 읽은 것 같지 않은데 ....
        그저 좋아지는 시나 좋아해요.

        내가 가끔 쓰는 짧은 글은, 길게 말이 되게 쓰려니 너무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뜻 전달에는
        적당히 한두 마디로도 될 것 같아서 또는 드러나게 쓸 수 없어서 감추고 얼버무리느라 그렇게
        쓰는, 그야말로 짧은 글이지요 (후자의 경우는 사람들이, 잘 쓴 시 같다고 한 적도 있지만요),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글이거나, 어떻게 이해 해주시겠지 하는 글들. ㅎ ㅎ

        생존의 도구로서 한 역할 제대로 하게끔 진화한 뇌가 나아가서 스스로를 즐기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뇌는, 최근에 등장한 전산과학 분야인 VR (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의 진짜 대가(master)가 됐고요. 순식간에, 16년 전 어느 봄날 곁에서 팔을 가볍게
        치며 말 걸던 K의 그 순간을 지금 그대로 재현해주네요.

      • 노루2012.03.18 07:21

        미처 생각 못햇는데 헬렌님이 잘 지적하셨네요. "모래알 보다 작은 미미한 존재"가 감히 ....
        어디선가 읽은 기억에, 그래서 헤겔은 우리(정신)가 세계 정신의 일부라든가 그런 ...
        실은 헤겔이나 풀라톤이나 자기 뇌에 속은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요.

        그래도 때로는,

        뇌여, 그대가 나를 속일지라도
        모른 체 하리라
        그게 다만, 나의 행복을 위해서인 걸

        해도 되는 것 같아요. ㅎ ㅎ

    • 호박꽃의 미소2012.03.18 21:57 

      "뇌~
      하늘 보다 넓다!"
      시인의 눈에서 본 뇌에 관한 시어들이 어떤 것일까 참 궁금했어요.
      아마도 뇌에 관한 의료지식으로 무장한 분도
      그렇게 표현 못할것 같은데...
      사실,
      나이 많은 새댁 조카 2명이 신경외과 전공자가 있어요.
      뇌를 전공한 의학도들에 의하면
      관심을 가지고 보면 볼수록
      정말 재미가 있는 부분이
      뇌 라고 하더군요..

      뇌를 가지고
      시를 쓴다는 자체 부터가 저는 신기롭기만...ㅎ

      • 노루2012.03.18 23:46

        단순하고 명백한 논리는 똑똑한 사람이면 누구나 수긍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치 않은 경우를 본 적이 있지요. 그게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 관한 거였으면 물론 수긍했을 사람이 전혀
        이해 못하는 듯 딴 소리 하더군요. 이 사람의 뇌는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휘는 논리'를 갖고 있구나, 모른 척 잡아떼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그때 들었지요. 말하자면 그 사람 뇌의
        논리회로에는 이익 보호 장치가 되어 있는 거지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는 것도 결국 뇌가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거겠지요.

    • 깜이河河2012.03.20 10:52 

      한없이 깊고 넓은 뇌, 생각,,....
      하늘을 두루마리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라는 찬송가사를 처음 접했을때처럼
      저는 지금도 햇볕에 날아다니는 먼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노루님 아름다운 영혼의 시...4차원을 아는가...
      그 공간에서 지금도 저는 그냥 날아다니고 있나봐요

      • 노루2012.03.20 22:48

        소연님의 글에 어린 소녀 시절 얘기가 자주 아주 실감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던 게 생각나네요. 최근에는 또 주유강산에
        바쁘셨지요? 그러고 보니 소연님은 몸도 뇌도 다 훨훨?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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