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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 B. White 의 에세이 '시 (POETRY)'
    2012. 11. 17. 03:55

         [E. B. White 의 에세이집 One Man's Meat 1944년판에 실려 있는,

          그가 1939년 11월에 쓴 에세이 'POETRY' 를 번역해 보았다.

          E. B. White 은 시집 The Lady is Cold (1929) 와 또 한 권의 시집을

          냈다.

     

          내 번역 탓도 있겠지만, 역시 원문이 번역문보다 '대체로' 더 술술,

          더 분명하고 더 재미있게 읽힌다. 원문의 90줄이 번역문에서는

          65줄인 건 생각했던 거와 반대다.]

     

     

     

         "시인들이 좀 더 분명하면 좋겠어," 옆방에서 아내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모두들 바라는 바다. 시인들이 평이하게 쓰면 우리 모두는 좋아할 거다. 또는

    그럴 거라고 우린 생각한다. 시인들은 그러나 저들의 높고 신비스런 방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시인은 더는 아니고 딱 그만큼만 명확하려 한다; 마치 배

    밑바닥이 단단한 어떤 것도 스치지 않게 하려는 선원처럼, 명료한 바닥을 그는

    신중히 접근한다. 시인의 즐거움은 신비화를 통해 의미가 강렬해지도록 의미를

    조금 감추는 거다. 그는 아름다움의 베일을 열지만 그걸 치우지는 않는다. 완전히

    명료한 시인은 반짝거리는 하찮은 거다.

     

        이 주제는 매혹적이다. 내 생각에 시는 최고의 예술이다. 그것은 음악과 회화와

    이야기하기와 예언과 춤을 합친 거다. 기풍에서는 종교적이고 자세에서는 과학적

    이다. 진정한 시는 경이의 씨다; 그러나 나쁜 시는 아무 쓸모없다. 내 생각에는 긴

    시라는 건 없다. 길면 그건 시가 아니다; 다른 어떤 거다. 이를테면 John Brown's

    Body 같은 책은 시가 아니다 -- 그건 일연의 시들을 함께 끈으로 묶어 놓은 거다.

    시는 강렬함이다. 어떤 것도 길게 강렬할 수 없다.

     

        어떤 시인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시인들 보다 명료하다. 큰 인기를 얻거나 아주

    유명해지는 데에 아주 명료하거나 (Edgar Guest 에드가 게스트처럼) 아니면

    완전히 불분명한 것은 (Gertrude Stein 거트루드 스타인처럼) 어느 정도 유리하다.

    이 땅에 첫 시인은 -- 느슨하게 그렇게 말해도 된다면 -- 에드가 게스트이다. 그는

    마국인에게, 어느 누구보다도 더, 운(rhyme)과 라듬의 즐거움을 주는 '노래하는

    사람'(the singer)이다. 내가 다른 작가의 어떤 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그 절절한

    감정을 그 또한 그에게 만족하는 독자 중 누구에게 느끼게 하는지는 내겐 매우 흥미

    있는 질문이다. 민주적이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것에서 다수결 원칙에 만족한다, 그런

    것 같다, 문학을 빼놓고는.

     

        시의 난해함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미친 시인으로 해서 생기는 난해함이 있다.

    이건 드믈다. 광견병이 흔하지 않듯 미친 시인도 흔하지 않다. 실망스러운 수의 평판

    좋은 시인들은 뭐랄 수도 없이 제정신이다. 다만 조금만이라도 미친 듯 보이려는

    시인의 바램에서 생기는 난해함이 또 있다. 이건 흔하고 상당히 불쾌하다. 통근하는

    사람이 아내를 남겨 두듯이, 자기의 이성을 의도적으로 떠난 시인의 작품보다 더

    혐오스런 어떤 것도 나는 모른다.

     

        그 다음에, 아주 간단한 생각조차도 밑바닥을 휘젓지 않고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작가들의 무능력에서 오는, 의도적이 아닌 난해함 또는 불명료함이 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생각을 3-운 또는 4-운(foot) 줄[*] 하나에 억지로 집어넣을 때 생기는

    난해함이 있다. 시의 기능은 집중하는 거다; 그러나 때로는 과집중이 있게 되고 그런

    시는 승객 수가 절정인 시간의 지하철에서 보다도 편하지가 않다.

     

            [*] 4-운 줄: 한 줄에 강약(또는 약강)이 이루는 리듬의 단위(foot)가 넷인

                 줄. 예(Oxford Advanced Learner's Dictionary 에서): 'For men may

                 come and men may go' 를 4-foot 로 나누면 ('강'에 밑줄) 'For

    men

    /

                 may come / and men / may go.'

     

        때로 시인은 어떤 소리의 조합에 의한 서정시 음조의 가능성에 완전히 빠져서,

    무엇보다도, 처음에 말하려고 했던 것을 잊고, 그래서 또 형편없는 엉킴이 생긴다.

    이런 종류의 난해함은 내가 크게 동정하는 바다: 시인이 시를 하나 얻는 과정에서

    아주 자주, 서정시 음조의 '작은 장식품' -- 귀에는 우단처럼 보드랍게 들리고

    눈에는 깃털처럼 예쁘지만 시의 구조와는 확실히 어긋나는 한 줄을 떠올리는 걸

    알고 있다. 뮤즈의 작은 친절에 자연히 고마워하는 시인이, 이런 하찮은 장신구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늘 골치아프다. 보통 그는 이 반짝이는 것을 시의 어딘가에

    그냥 떨구어 놓고 너무 어지러워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시인에 대해서

    경멸적인 걸로 들린다; 사실은 나는 시인을 질투한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시인이고 싶다.)

     

        내가 시인들에게 불평하는 이유는 (그들은 내가 불평하고 있는 걸 알고 놀랄

    거다) 그들이 명료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너무 근면하다는 거다. 시인의 근면

    (diligence)은 장부 맡은이의 부정직과 같다. 너무 많이, 너무 근면하게, 그리고

    너무 도사처럼 작품을 쓰는 다수의 서정시인들이 있다. 출산을 기꺼이 제때까지

    기다리려는 시인이 별로 없다 -- 그들은 조산아를 낳아서 안전하게 카슬론

    올드 활자체(Caslon Old Style)로 인쇄된 후 보육기에서 자라도록 허용한다.

     

        내 생각에 미국인들은, 아마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감명하고 시인들은 그걸 이용한다. 거투르드 스타인은, 내 추측이긴

    하지만, 글로 독자들에게 준 즐거움보다 더, 놀랄 만큼 많은 신문 지면을 제공

    받아 온 걸로 내게는 보인다. 스타인 여사는 재미와 열정으로 실험 류의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그건 괜찮다. 단어의 소리에 대한 그녀의 깊은

    관심은 칭찬할 만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소리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너무나 많은 작가들은 완전히 음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어떤 작가도,

    계획적으로 집요한 경우 말고는, 항상 "장미는 장미다 (A rose is a rose)"의

    작가처럼 그렇게 세련되게 모호하고 생략하는 식으로 -- 그보다 좀 진부한

    식으로는 결코 아니게 -- 작품을 쓰리라고 아직은 믿을 수가 없다. 백 퍼센트

    완곡하기 위해선 순전한 천재라야만 한다 -- 아무도 그렇게 훌륭하지는 못하다.

     

        대체로 내 아내가 옳다고 생각한다: 시인들이, 부적합하게 단단한 바닥으로

    까지 가지 않으면서도 좀 더 명료할 수 있을 거다. 시인들에 대해서 내가 이런

    식으로 썼다는 게 놀랍다. 나도 유감스럽게도 근면파다. 연필을 깨물고는 표시

    되어 있는 달력을 노려보고 있다.

     

     

                                    *                                     *

     

     

    번역에 관해서

     

    상대적으로 더 의역에 가까운 번역과 더 직역에 가까운 번역 둘 중에서 나는,

    특히 비소설인 경우에, 선뜻 의역 쪽을 선호하게 안 된다. 원문의 원문다운

    맛을 놓칠까 해서다.

     

    간단명료하게 잘 쓴 글이 더 번역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의역에서는 간단명료함을 잃게 되고 직역에서는 잘 쓴 글처럼 읽히지 않기가

    쉽다. 어쨌든 원문에서 느끼는 최상의 느낌을 번역문에서도 느끼기는 어려울

    거다. 반면, 내용보다도 문체에 있어서, 덜 잘 쓴 원문의 멋진 의역은 번역문이

    오히려 잘 쓴 글의 느낌을 줄 수도 있겠다.

     

    'simple idea' 에서 'idea' 의 번역은 그냥 '아이디어'가 이젠 대체로 가장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아이디어'는 이미 우리 말이 된 외래어다.

    위의 번역에서는 '생각'이라고 했지만, 적합한 단어나 표현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참 많다. 아직 외래어라고 할 수는 없고 마땅한 번역어를 찾기 어려울

    때는 한문 조어를, 괄호 안에 넣은 한문과 함께,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럴 바에는,

    영어의 경우 영어 단어를 그냥 쓰는 게, 역시 이제는,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요새 독자층 대부분이 정말 한문보다 영어에 더 익숙하다고 할 수

    있을까?)

     

     

    Louise Glück

     

    시에 관한 에세이집으로, 10년 전쯤엔가, 번역해볼까 했던 책이 루이제 글릭

    (Louise Glück) 얇은 Proofs and Theories: Essays on Poetry

    (1994)다. 글릭의 시를 읽게 되고 이 에세이집까지 사게 됐던 건 우연히 읽은,

    New Yorker에 실린 그녀의 시 한 편과 그 스타일이 좋아서였다. (이렇게

    해서 또 한 , 한국을 떠나오면서 부치고 온 책 박스 하나가 배달 중

    실종되면서 잃어버린 책이 확인됐다.)

     

    글릭은 시의 소재에서는 몰라라 스타일에서는 E. B. White이 좋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루이제 글릭의 시와 스타일을 느껴보기에는 인터넷에서 그녀의

    시 한두 편을 찾아 읽어보는 게 최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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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nbee2012.11.19 17:52 

      번역은 정말 어려운 작업인 것 같아요.
      의역이냐 직역이냐 그것도 간단치가 않은 문제일듯하고요.
      교수님의 글은 그냥 교수님 생각을 써놓신 것도 번역문같이 느껴질 때가 저에겐 자주 있어요.
      그리고 교수님께서 영문학을 하시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자주 들지요.

      큰딸이 가끔 번역을 맡아서 하는데, 감수를 해달라고 이메일로 보내오는 것을 읽을라치면
      어찌 그리도 딱딱하고 글의 흐름이 어색한지.. 의역을 하라고 하면 본 뜻이 그것이 아닌데
      왜 그러냐고 하면서...ㅋ 그래서 번역보다 그애가 번역해둔 글 감수가 더 어려워요.ㅎㅎㅎ
      통번역 대학원을 나왔어도 번역을 그렇게도 못하더라고요.

      교수님의 번역으로 [POETRY]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 노루2012.11.20 03:59
        '눈에 띄지 않은 보물' 같고 내버려두면 계속 그럴 것 같은 정말 특별하고 좋은 책이 아니면
        번역은 소일 거리로 할 만한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짧은 명문의 번역은 한국어 공부 삼아 가끔
        어떨지 싶지만요. 그럴 땐, 여기선 일반 사전과 짝을 이루는 'thesaurus'에 해당하는, 유사어
        사전이 있으면 좋은데 우리 나라에 유사어 사전 좋은 게 이제는 있는지 모르겠어요.

        모녀의 번역, 감수로 불어로 쓰인 좋은 책 하나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일이 생기면 좋겠네요.
        영국 (여성) 소설가 George Eliot 의 Silas Marner,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의 하나인데 알고 보니,
        아는 분이 오래전에 그 번역판을, 아마 한국에서 처음으로, 내셨더군요. 소설이면 그런 책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일 하는 건데요. ㅎ
    • 헬렌2012.11.21 19:56 신고

      노루님이 이 포스팅을 올리실 때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지 생각되어져 여러번 읽었어요.
      그리고 '시'에 대한 E.B. White 의 글에 하나 하나 다 무릎을 치게 만들 정도로 저는 그의 글이 좋아요.
      구구절절 공감해서 크게 하하 웃게 만드는 표현이 많았어요ㅎ 노루님 번역이 너무 훌륭해서 그런거겠죠?
      좋은 글 번역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white의 표현처럼 제가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훌륭한 시(최고의 예술..음악과 회화와 이야기하기와 예언과 춤을 합친 것) 를 많이 접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좋은 시를 찾아 읽어보기도 전에... 좋지 않은 시의 예를 접하고 나는 시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거죠. 난 시인의 난해함과 감정의 복합성을 따라가지 못할거라고 단정을 짓고요.
      시는 강렬함이다.. 어떤 것도 길게 강렬할 수는 없다.. 이말이 통하는 것이 꼭 '시' 만은 아닐거에요...

      저는 번역은 잘 모르지만 번역은 어려워요. 일기 한 줄 쓰는 것도 어려운데 남이 쓴 글을 다른 언어로 만들어 낸다는게 얼마나 어려울까요..그러니 전문가겠지만요ㅎ
      비소설인 경우 의역을 하게 되면 위험할 것 같아요. 근데 노루님이 말씀하신 간단명료하게 잘 쓴 글이 번역하기 더 어렵다는 것이...이해가 안가면서도 이해가 갑니다^^ 간단 명료하면 번역하기 쉬울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래서 번역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실력이 국어실력인가봐요.. 모국어를 벗어난 외국어 실력은 모국어로 담아낼 수가 없을테니까요. 앞으로 노루님이 번역해 주신 글을 읽는 것도 또 큰 즐거움이 될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 노루2012.11.22 11:25

        나도 성격이 급한 면이 있어서 처음 한 번, 그것도 천천히도 아니게, 읽다가 시가
        괜찮은 것 같다는 느낌이 안 들면 채 다 읽지도 않고 넘겨버려요. 그런데 그렇기가
        그렇지 않기보다 아주 훨씬 잦지요, 물론.

        사실은, "길면 그건 시가 아니다"고 한 게 재미있어서 번역해볼 생각을 했지요.
        전에, 산문시를 두고 젊은 시인과 온라인 상에서 이렇다, 꼭 그런 건 아니다, 하면서
        주고 받은 적이 생각도 나고 해서요.

        맞아요, 국어 실력이 문제가 되지요. 그래서 국어 공부 삼아서 어쩌다나 한번 번역해
        봐야겠어요.

    • jamie2012.11.22 00:21 

      노루님의 시에 관한 글을 읽고...저도 잠시 서성이며 시 몇 편을 읽어 봅니다.
      E.B. White은 'Charlotte's Web'의 저자로군요. 저도 애들 어릴 때 덩달아
      읽어 보았던. 시에 관한 의견에 공감되어 반갑기까지 했답니다.
      저도 느끼던 것을 타인이 그대로 표현해주면 읽으면서도 생생하거든요.
      시인은 정말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많은 시보다는 단 한 편이라도,
      사람의 마음에 남는 시를 쓰는게 시인들의 바램일텐데...아마 그래서
      많은 시를 써야 그 중 몇 개를 건지게 될 것도 같긴 해요.
      시인은 철학, 음악, 문학, 미술을 아우린 그 어떤 순간적인 관념 혹은 느낌을
      몇 자의 단어로 잡아내야 하니, 시가 가장 어려운 예술 장르라는 생각도 들어요.
      덕분에 좋은 글 접했습니다~^^

      • 노루2012.11.22 13:24

        E. B. White (본인이 늘 이렇게 쓰여진 이름을 좋아했다네요)은 한국의 학생들에게는
        또 William Strunk Jr. 와 공저인 얇은 책 'The Elements of Style'로 해서 알려져 있기도
        할 거예요. (이런 류의 책도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된 책이지요.) 우리 애들 책장에도
        'Charlotte's Web'이 있던데 안 읽어봤네요.

        시인에게도 자기 맘에 드는 시, 좋은 시는 오히려 쉽게 써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시는 억지로 끙끙거려서 쓸 건 아니지요. 어느 여성 시인이, 어디 여행만 다녀오면
        사람들이 시 한두 편 썼냐고 묻는다고, 화를 내던 게 생각나네요.

        고흐도 시에 대해서 jamie 님처럼 이야기했더군요. 그림이나 소리나 몸짓으로 보다는 더
        언어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본능 같은 게 우리에게 있어서일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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