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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그린 삽화.
Jacquleyn Berrill 의 Albert Schweitzer: Man of Mercy (1956).
지난주에 단골 책방에서 그날따라 그냥 나오기가 좀 미안한 생각에 한 권 들고 나온, 평소 여러 번 보고도 그냥 지나쳤던, 슈바이처 전기다. 가볍게 읽히고 재미가 있어서, 읽고 있던 다른 책에 별 방해 안 받고, 지난주에 다 읽었다.
어떤 인물의 전기(傳記)를 읽는 것은 어차피 그 인물에 대한 저자(그게 본인이든 아니든)의 얘기를 듣는 거다. 실재의 그 인물을 보다 정확히 알고 싶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다소 소설 읽듯, 감동적인 부분에서는 그냥 감동하면서, 읽어도 좋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래저래서 내게 좋았던 구절들을 인용해 놓는다.
"내가 다시 산다고 해도 나는 같은 길을 갈 겁니다. 이게 내 운명이니까요. 내 삶이 쉬운 건 아니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요. 하지만 나는 젊은 시절의 이상을 따를 수 있었던 복 받은 소수에 속합니다, 깊이 감사합니다." (p. 5) [1952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슈바이처 박사가 뒤늦게 1954년 11월에 노벨상 수상 연설을 하기 위해 방문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의 한 기자 질문에 답하면서..]
"개인으로서나 국가로서나 우리는 전쟁을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것은 비인간적인 범죄에 우리를 유죄로 만드니까요." (p. 8) [슈바이처 박사의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 그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Munster 계곡의 들판을 달리고 Vosges 산 기슭의 언덕을 오르면서 강한 근육을 갖게 됐다. (p.15)
알버트와 그의 어머니 둘 다 할아버지의 그 급한 성격을 가젔다. (p.28)
알버트는 또 어머니로부터 둘 사이에 가까운 유대를 맺어준 수집음과 조용함을 물려받았는데, 어머니와 들 만 있을 때는 그런 수집음 때문에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다. (p. 28)
이러던 중 한번은 그들이 그 다리에 이르렀을 때 그 유태인이 돌아서서 소년들을 보고 온화하고 좀 쑥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 자기 미소가 알버트 슈바이처에게 그의 생애 최고의 교훈 중 하나, 관용의 교훈을 가르쳐준 것을 [그는] 결코 알지 못했다. (p.34)
알버트 슈바이처가 성인이 되었을때 그는, 나무 나막신을 신고 다니는, 소작농의 아이들이 지주들의 더 많이 교육 받은 아이들보다 여러 가지로 우수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마을 학교에서의 몇 년에 대해서 늘 고마워했다. (p. 88 - 89)
매일, 늘 혼자, 언덕을 넘어서 학교로 오가며 조용하게 오래 걷는 것은 그를 더욱 더 주위 자연의 세계로 끌었다. (p.42)
그는 대지의 아름다움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잡아보려고 시도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그러기 위해 노력하기를 그만두고, 그걸 재현하기 위해 애쓰는 대신 그 아름다움에 흠뻑 젖으면서 눈으로 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p.42)
저녁에 숙제를 끝내면 한 번 더 피아노 연습을 해야 했는데 그가 항의하면 그의 숙모는 늘 말했다, "나중에 언제 네가 음악을 필요로 할지 결코 모른다." 물론, 그녀는 그게 성인이 된 알버트 슈바이처에게 정말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p. 45)
[아바지 수바이처 목사가 교장으로부터 슈바이처가 학습능력을 더 보여주지 못하면 그 학교를 쫓겨날 거라는 얘길 듣고 온 후에] 그때조차도 그 소년은 몽상에 잠기기에서 벗어나거나 성적을 낫게 할 수 있는 걸로 보이지 않았고 크리스마스 때 받은 그의 성적표는 어머니를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울며 보내게 했다. 그러나 세 달 후 부활절 때 받은 성적표에서는 그는 반에서 최상급에 들었다. 이 짧은 기간에 무슨 일이 생겼나? 간단히 말하면 새 담임 Wehmann 박사가 소년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은 거였다. [...] 그는 Wehmann 박사가 가장 작은 일에서조차도 의무에 충실함을 느꼈고 그래서 천천히, 어떤 형태의 벌보다는 오히려 이런 영향의 결과로, 알버트는 점점 더 정신을 차리게 됐다. (p. 48 - 49)
알버트는 타고난 성격으로 늘 수줍은 소년이었다. [...] 그러나 알버트는 열여섯 살이 됐을 때 수줍음의 모든 자취를 잃고, 누구에게나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통념에 도전하고 가능하면 자신의 신념을 말하는, 거의 그 반대 극으로 갔다. 모든 것을 이성의 검증에 놓으려는 바램이 그의 생각이 됐고 그래서 이 무렵의 그는 자주 그의 가족, 특히 [목사인] 아버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 그의 숙모는 그가, 자신(!)이 어른인 것처럼, 그렇게 어른들과 논쟁하는 것을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p. 57)
지금은, 어떤 문제를 정말 토론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를 만나면, 자신이 열여섯일 때 마냥 열정적이 되어서, 마치 그 둘이 같은 나이인 것처럼 그 정신적인 싸움에 뛰어든다. (p. 58)
[짐나지움의] 교장 William Deecke 는 엄격한 태도를 지녔지만, 학생들은 그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치는 학자일 뿐아니라 소년들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울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고 고맙게 여겼다. 그들은 그걸 본능적으로 이해했고 그에 따라 반응했다. [...] 알버트가, 우리가 철학이라고 말하는, 지혜와 지식에 대한 사랑을 갖게 된 것은 이 사람으로부터였고, 오늘날 알버트 슈바이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p. 58)
[Strasbourg 대학 학생 시절에] 알버트는, 독일의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북미의 대학들처럼 많은 과목의 수강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독서와 연구, 그리고 순전히 깊은 사색을 위한 많은 기회를 가졌다. (p. 66)
이른 여름 귄스바하에서의 짧은 휴가 중 알버트는 어느 아침 일찍 잠이 깨어서 [...] 일어나기 전에 그는, 침착하고 신중하게, 30세 이후에 직접적인 인도적 봉사에 헌신하기 위해서, 그 이전까지는 예술과 과학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모든 정신적인 것들에 열중하며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p. 67)
[30세가 된 해 10월에] 신학대학장 사직서를 제출한 지 채 한 달이 안 돼서 알버트는 의대생으로서 첫 강의를 들었다, 그후 7년간 계속될 과목 공부의 시작이었다. (p. 88)
그는 그 정원과 키 큰 나무들을 사랑했고 그들을 떠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다. 한 번 더 행운이 끼어들어서 {...] 그가 계속 그 정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p. 89)
오랜 후 드디어, 1911년 크리스마스 한 주 전에, 알버트 슈바이처는 그의 의학 '최종시험'이 있었던 건물을 나서며 차고 구름 한 점 없는 깜깜한 밤 하늘의 별들을 올려다 봤다. [...] 오직 그의 뛰어난 건강이 의학을 공부하는 동안 신학과 음악과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p. 90)
알버트 슈바이처는 또한 흑인들이 죽음을 자연스런 일로 인정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p. 109)
그들[슈바이처 박사 부부]은 모든 자연이 휴식을 취하는 겨울의 그 고요를 그리워했다. (p. 132)
그의 생각은 점점 더 그 전쟁[세계1차대전]의 원인들에 돌아섰다. 유럽문명이 적절하고 실행 가능한 윤리나 행동 규약의 결여로 인해서 산산 조각이 나고 있었다. (p. 135)
[아프리카 람바르네의 그가 세운 병원에서 일하던 1916년] 막 해가 질 무렵 보트가 천천히 하마 떼 사이를 지나고 있을 때 '생명 경외'란 말이 그의 마음에 떠올랐고 그건 마치 문이 열린 것 같았다. 이제 그는 모든 생명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포함하는 한 표현을 찾았다. (p.139)
[1955년 1월 14일, 그의 80세 생일에] 그는, 40년도 더 전 그가 아프리카로 올 때 의약품을 넣어 온 나무 상자들로 부터 만들어진 그의 책상 앞에 앉았다. [...] 읽어야 할, 생일 인사가 담긴 많은 편지들이 있었다. 봉투마다 조심스럽게 열고 [...] 발간된 슈바이처의 열일곱 저서 대부분은 바로 그런 종이에 처음으로 쓰여졌다. {p. 189)
'내 삶을 변화시킨 책'이란 책 제목에 호기심이 가서 Coady & Johannessen 이 편집한 'The Book That Changed My Life'를 사다 읽었었는데 지금도 가끔 그 책을 들쳐보곤 한다. 71명의 작가/저술가들에게 기고 받은 글을 모은 책인데,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그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해서다.
그런데 슈바이처 전기를 읽으면서, 내게도 중요한 한 갈래에서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일련의 책들이 있고 그 중에 세 권을 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났다. 그것들은, 읽은 차례대로, 성경, 디이크리히 본 회퍼의 '옥중서간', 그리고 슈바이처의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jus'(1906년 독일어판의 1967년 영역판)이다. 마지막 책은 슈바이처가 31세 때 낸, 그리고 내가 40세 때 읽은 '심각하게 읽힐' 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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