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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시에 대해: 하이네의 시 한 편
    2015. 10. 9. 00:48

     

    번역시 문제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는 것은 나중 언젠가로 미루고, 우선

    떠오르는 두 가지:

     

    번역시에서는 원문의 뉴앙스와 음악성(시의 소리와 리듬)을 살리기가 어렵다.

    그러니 그런 것들을 잃어버린 번역시에서 원문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이네의 시 영역본을 읽으면서 새삼  느꼈던 것도 그 점이었다.

     

    또 하나는, 줌 생뚱맞은 비유지만, 나름으로 다보탑 같고 또는 석가탑 같은

    예술적 아름다움을 지닌 시가 번역되면서는 석가탑 시는 상대적으로 번역이

    쉬워서 제 아름다움을 잃지 않을 것 같은데 다보탑 시는 평범한 시로 바뀔

    가능성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다보탑 시라면

    "내가 돌이 되면"은 석가탑 다. 캐나다의 시 낭송회에서 번역본 '국화' 시가

    받은 덤덤한 반응과 "돌' 시가 받은 절찬이 이해가 된다.

     

    아래는 하이네 영역본( Gustave Mathieu, Guy Stern 공역)

    "In The Wonderously Beautiful Month of May"를 번역해 본 거다. (각 연의

    셋째 줄에 "그때"는, 영역의 "Then"이 핑계지만, 좀 망서리다 넣었다.)

     

    노래처럼 들리는 하이네의 원문시와 서정주의 "내가 돌이 되면"을 덧붙였다.

     

     

     

    경이롭게 아름다운 오월에

     

         하인리히 하이네

     

     

    온갖 꽃망울이 터지는

    경이롭게 아름다운 오월에,

    내 가슴엔 그때

    사랑이 싹텄네.

     

    온갖 새들이 노래하는

    경이롭게 아름다운 오월에,

    내 열망과 연정을 그때

    난 그녀에게 고백했네.

     

     

     

    Im wunderschoenen Monat MaiHeinrich Heine

     

    Im wunderschoenen Monat Mai,

    Als alle Knospen sprangen,

    Da ist in meinem Herzen

    Die Liebe aufgegangen.

     

    Im wunderschoenen Monat Mai,

    Als alle Voegel sangen,

    Da hab ich ihr gestanden,

    Mein Sehnen und Verlangen.

     

     

     

     

     

     

    내가 돌이 되면

     

         서정주

     

     

    내가
    돌이 되면
     
    돌은
    연꽃이 되고

     

    연꽃은
    호수가 되고

     

    내가
    호수가 되면

     

    호수는
    연꽃이 되고

     

    연꽃은
    돌이 되고

     

     

     

     

    ---------------------------------------------------------------------------------

     

    • 파란편지2015.10.09 22:57 

      꼭 그렇게 양분(兩分)되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번역을 할 때의 시를 '다보탑' '석가탑' 같은 시로 나누어 본 건
      절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소설(산문)은 번역이 가능해도, 시는 불가능한 게 아닌가
      좀 극단적이고 유치하지만 그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오늘 한글날을 맞이한 방송에서는 서정주의 시도 소개하는 걸 봤는데
      서정주 시인의 시를 볼 때마다 친일파 시인으로 낙인을 찍어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은
      정말로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돌이 되면"도 그렇지만
      '저 시인의 시 중에 감동적이지 않은 시도 있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노루2015.10.10 21:25

        불국사의 석가탑이 다보탑보다 미적으로 더 뛰어난다는 얘기를
        어렸을 적에 들은 적이 있었네요. 운율보다도 이미지나 통찰이
        지배적인 시는, 그러니까 자유시나 산문시가 그렇기가 쉬울 텐데,
        상대적으로 번역이 덜 어렵겠지요.

        서정주 시인의 전두환 생일 축시는 협박 때문이 아니었다면 ....
        그래도 데인 관계에서 릴케처럼 아주 나쁜 사람이란 말은 전혀
        떠돈 적이 없으니 ...

    • willowpond2015.10.10 07:44 

      저도 번역된 책이나 시 를 읽을때 느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왜 바벨탑으로 교만함을 보여서 세상언어가 혼잡을 이뤄졌는지~~~ㅠㅠ

      • 노루2015.10.11 02:18

        그렇잖아도, 한중일만 해도 언어가 하나였으면 좋겠단 생각은 가끔 했었지요.
        그래도 한국에는 좋은 외국 서적들이 빨리도 번역되어 나오는 것 같아요. 고마운
        일이지요. 미국에서 유럽이나 남미의 좋은 작품들 접하기가 여러가지 이유로 한국에서보다
        더 어려운 경우도 많고요.

    • willowpond2015.10.10 07:45 

      그래도 아름답네요~

    • 노마드2015.10.10 22:50 

      노루님.
      아름다운 한국의 시를 영어로 번역해서
      소개하심은 어떨까요?

      • 노루2015.10.11 02:26

        영어권에서 자라고 한국어도 물론 알고 영시도 아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누가 좀 그렇게 해주면 좋겠어요.
        한국의 영문학도/학자 중에서도요. 영문과에서 우리 시의
        영역을 공부하는 과목이, 적어도 대학원엔, 있잖을까요?

      • 노마드2015.10.11 10:44 

        수많은 번역소설과 번역시를 대하며 살아왔지요
        그런데 우리 문학도 분명 있는데 왜
        영어 잘하시는 분들은 영어를 한국어로 소개하는 것에만
        관심 있는지
        아마도 국내시장에 팔 수 있다는 시장이 보여서겠지요
        영어권에는 채 마켓이 보이지 않으니 한국어 영역이 힘들겠구요

      • 노루2015.10.11 12:09

        우리야 누가 외국 문학을 한국어로 번역해주면 하여튼 좋은
        것 아닌가요? 온갖 외국산 과일을 맛볼 수 있는 것 처럼요.

        우리 문학의, 예를 들어, 영역이 활발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번역 능력과 작품 번역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둘 다 갖춘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게 우선적인 이유일 것 같아요. 시장이야
        미국 시장이 훨씬 크고요.

        신경숙의 소설이나, 여기 동네 도서관에서도 본 적 있고 한
        권("Black Flower")은 빌려다 읽기도 한, 김영하의 두 소설의
        영역본은 각각 어느 정도 팔렸는지 모르겠네요.

        노마드2015.10.11 12:43 

        우리나라의 출판시장은 아주 작아요
        일본의 출판시장은 우리나라의 4배
        미국은 말할것도 없이 엄청 크조요
        그러니 우리문학을 좀 알리고 팔면 수익성도 더 있을텐데
        한국인 입장에서 영어권 시장을 파약하기 힘들어서 그런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의 정서에 우리는 뒤떨어지고 외국것이 더 좋고 뛰어나다는 은근 열등감과 사대주의 에도
        기인하는 것 같아요 ㅎㅎㅎ

      • 노루2015.10.11 13:17
        턱없이 외국 것이 다 낫다고 생각하는 듯한 사람도 많은 것 같고
        턱없이 우리 것이니까 다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듯한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고 나쁜 게 나쁜 거라고, 될수록
        객관적으로 보려는 사람도 보이는 것보다는 더 많을 것 같은데요. ㅎ
    • 호박꽃의 미소2015.10.19 00:31 

      쨟고도 함축성 있는 시가
      때론 이렇게 참 좋습니다.
      느낌도 감성도 모두 일체가 되는...ㅎ

      서정주 시인님의
      내가 돌이 되면...
      덕분에 한편 읊어 봅니다.^^

       

      노루2015.10.20 07:56
      서정주 시인이, 어떻게 '내가 돌이 되면'을 쓰게 됐는지를, 그리고 그 시를
      카나다의 시낭송회에서 서양인들이 특히 좋아하더란 얘기를 쓴 걸 전에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요. 말하자면 철학적으로 읽혀서 서양인들이
      좋아한 건데, 실은 절 뜰에 서 있는 석조물(어떤 거였는지 정확하게 생각 안
      나네요)에서 연꽃 형태와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고서 싶은 생각 없이
      쓴 거라고요.

      하이네의 저 시를 독일어로 발음해보고 영역본을 읽어보니 같은 시라고
      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 momo2015.12.02 17:51 

      다보탑과 석가탑!!
      비유와 상징이 너무나 잘 어울려서, 지금 이순간 노루 선생님을 존경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유명한 시가 외국에서는 별로고
      외국에서 별로인 시가 한국에서는 명시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군요.
      노벨상의 관문 앞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 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힐 수 있겠어요.ㅠㅠ.

      • 노루2015.12.02 23:24

        뉴욕타임즈에서 얼마 전에 읽은 기사가 생각나네요.
        요새 시인 Tyler Knott Gregson과 그의 시집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요.
        초판 10만 부를 찍었다는 -- 미국의 유명 시인 Louise Gluck의 작년
        National Book Award 수상 시집이 2만 부 팔린 것과 대조가 되는 --
        시집 "All the Words Are Yours” 에는사랑을 노래한 하이쿠 형태의 시가
        많다네요. 그중 소개된 한 수는:

        I want my days filled
        and my nights saturated
        with the sound of you,

        낮을 채우고
        밤이 그득했으면
        그대 소리로

        (재미 삼아 5-7-5 조 살려 대강 번역해봤네요. ㅎ)

        동서의 정서가 다를 바 없지요. 우리 시가 외국에서도
        읽히고 사랑 받으려면 우선 좋은 번역이 역시 필수겟지요.

      • momo2015.12.03 08:08
        우와...따끈따끈한 소식 감사합니다!!
        좋은 방법은 번역가들이 시인으로 전업해서
        영어나 스위덴어로 직접 시를 써서 노벨상을 받는 겁니다!^^
        너무 황당한가요? 하하^^

        그런데 노루 선생님은 독일어도 잘하세요??
        원문을 붙여주시니 참 좋습니다. 이것도 공유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 노루2015.12.03 22:53

        독일어는 학생 시절 한 학기(? 일 년?) 수업 받은 건 사실인데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게 없네요. ㅎ

        지금 미국에서 널리 인정 받고 있고 작품 활동이 활발한 중국계 소설가 중에
        National Book Award 도 받은 Ha Jin 과, 의대 출신의 Yiyun Li 가 생각나는데,
        둘 다 중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미국으로 왔다는 점에서 중국의 영어 교육이
        궁금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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