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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된 고은의 시 '개마고원'시 2013. 12. 5. 08:14
문득, 영역된 고은 시인의 시를 인터넷에서 찾아볼 생각이 났다. 그래서 한 편 찾아낸 게
'KAEMA HIGH DESERT'다. 시인이며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Sunny Jung (정정선)과 역시 시인이며 문학사 전공 역사가인
Hillel Schwartz 공역의 고은 시집 'Abiding Places by Ko Un'(2006)에 실려 있는
시다.
KAEMA HIGH DESERT
by Ko Un
I did not ask to be human.
I do not by any means ask to be more than human.
Like an old animal who's come plodding up to the plateau,
I want to stay here a long time looking out across the high desert.
In deference, clouds do not rise
above the plateau;
in deference, small animals make no sound
across the plateau.
only the sound of the finest of hairs bristling
as blueberries out here ripen in the cold.
I ask simply to gaze in silence
across the Kaema plateau.
Today; today
& tomorrow.
Anyone who says anything at all here shall be shot.좋다. 여기 콜로라도의, 나무들은 없고 메마른 고원을 연상하며 읽어서 더 그런가. 고은
시인이 김대중 대통령 시절 북한 초청방문을 통해서 얻은 시라고 한다. 원문이 궁금해서
또 인터넷에서 찾아냈다.
개마고원
고은
사람이고 싶지 않더라
결코 사람 위의 것이고 싶지 않더라
개마고원
묵은 짐승으로 마루턱 어슬렁 올라서서
오래 개마더기 바라보고 싶어라
삼가 구름 일어나지 못하고
삼가 저 건너
작은 짐승들
찍소리 한낱도 없이
오로지 들쭉열매 익어가는 동안
추위에 잔터럭 일어나며
먼곳
입다물고 바라보고 싶더라
오늘도
내일도
아 무어라고 지껄이는 자 극형에 처함이여
영역본이 원문보다 내겐 더 좋다. 생생한 이미지나 느낌에서 원문이 더 나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건 뜻밖이다. 처음 이 시를 읽어보는 순서가 바뀌었어도 그럴까. 하여튼,
마지막 줄에서도 '지껄이다'보다 'say 말하다' 가 내겐 느낌이 더 좋다. 특이성보다는
보편성이나 평이성에의 끌림일까.
물론, 나는 영시를, 영역된 시를 포함해서, 제대로 읽을 수도 제대로 즐길 수도 없다.
그저 좋아지는 점이나 좋아할 뿐이다. 영역 '개마고원'에 대해서도, 원문과 함께 읽고난
후의 그 예기치 못한 느낌이나 적어 두려는 거다.
4년 전엔가, 그런 번역으로는 고은 시인은 노벨상 못 받는다고 열을 올리던 J 교수가
생각난다. 그가 읽은 시집이
'Abiding Places
'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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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lad (세래드)2013.12.05 11:46
인사 드립니다! sellad 입니다.
자주 찾아 오겠습니다.노루2013.12.05 12:31반갑고 고맙습니다.
이 짧은 포스트도 제대로 생각이 잘 쓰여지지가 않아서
이제 막 고쳐쓰기를 끝냈는데 그 사이 들르셨군요.
쓰기에 비해 읽고 즐기기는 잘 하는 편이라, 여기보다
sellad 님 방에서 만날 기회가 많을 것 같네요. -
eunbee2013.12.05 21:24
교수님 덕분에 좋은 시 읽었어요.
고은 시인님의 시는 왠지 만날 기회가 자주 있지 않아요. 찾지 않아서였겠지만요.
<만인보>라는 시를 쓰셨다는 것이 인상적으로 기억될 뿐이고, 그 시도 읽지 않은 것이지요.
고등학교 때인 것 같아요. 충북 예총에서 주최한 예술제에서, 산문경시대회에 우연히 참가했다가
승복차림의 고은시인의 강의를 잠깐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러나 그분의 시는 쉽게 만나지질 않았어요.
<개마고원>, 좋은 시예요. 영시로는 읽을 줄 모르니, 원어로의 시도 좋게 읽혀요.
'묵은 짐승으로 마루턱 어슬렁 올라서서
오래 개마더기 바라보고 싶어라'
고은께서는 이북이 고향이시던가요? 시에서 그런 그림자가 엿보여요.
인터넷 검색해 봐야 겠어요.^^
해마다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내나라 큰시인에 대해서도 이리도 모르고 살고 있으니...ㅠ-
노루2013.12.06 00:36
일상과 상관 없이 문둑문둑 생각나는 것들이 있네요.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의 몇 편은 문예지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하여튼, 고은 시인의 시는 읽은 게 모두 몇 편도 잘 안 될 거예요.
쓰려던 생각이 간단한 거여서 몇 줄 쓰면 될 것 같았는데 잘 안 쓰여 지네요.
eunbee 님 인용하신 구절을 예로 다시 생각해보네요.
"Like an old animal who's come plodding up to the plateau"
를 (굳이 우리 말로 옯기면서 읽거나 읽고나서 우리 말로 옯겨 보는 게
아니라) 읽어 나가면서 얻게 되는 '뜻과 이미지'가
"고원으로 느릿느릿(터벅터벅) 올라온 늙은 동물처럼"
쯤으로 기억되고 난 후, 원문의
"묵은 짐승으로 마루턱 어슬렁 올라서서"
를 읽으니, 순수한 우리 말로 된 이 구절이 당연히 훨씬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질 것 같았는데, 오히려 위 영어 구절의 평이함(영어권 사람에게도?)이
더 좋더라고요.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고원의 이미지에는 '깐깐함'보다
'대범함'이 더 맞아서인지. (물론, 원문 구절이 깐깐한 느낌을 준다거나, 는
전혀 아니고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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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2013.12.12 03:17
흠...노루님, 저도 원문의 강한 표현보다는
영역본의 평이함이 더욱 좋은데요...시상을 더 명료하게 보여주는.
고은 시인께는 죄송하지만, 영역이 더 깔끔해요.
다른 시도 좀 올려 주시겠어요?-
노루2013.12.12 12:02
유명 시인이 되고 나이가 들고 나서는, 시작 발표를 전보다 뜸하게 하는 걸
거의 원칙으로 했다던가 하는 어떤 시인 얘기를 어디선가 최근에 읽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뉴욕타임즈에서 읽었기가 쉬운데). 적당히 써도 다
받아주는 데다 나이에 따른 뱃장 때문에도 전 같지 않은 낮은 수준의 시를
발표하게 될까봐, 스스로 자기 시의 품위를 낮추게 될까봐 그런다고요.
저 영역판이 서점에 있는지 온라인에서 찾아보니 절판된 것 같았어요.
지금 이 답글 달기 전에 잠시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 시 '내 변방은 어디 갔나'와
시집 <순간의 꽃>에 실린 제목 없는 짧은 시 몇 편이 보이네요. 원문과 영역을
함께 볼 수 있는 시는 한 편만 보이네요. <순간의 꽃>과 그 영역판 시집,
<Ko Un, Flowers of a Moment, trans. Brother Anthony Of Taizé,
Young-moo Kim, Gary Gach>에 실린 (제목 없는) 시 한 편인데 읽어보세요.
엄마는 곤히 잠들고
아기 혼자서
밤기차 가는 소리 듣는다.
Exhausted
the mother has fallen asleep
so her baby is listening all alone
to the sound of the night train
'내 변방은 어디 갔나'보다 이 시가 좋으네요.
추신: 앞에 이야기한 시인, 자고 새벽에 일어나 커피 내리면서 저절로 생각이
났어요. 김종삼 시인. 꼭 그렇게 말한 건 아닌데, 인터넷 어디(?)선가, 읽으면서
대강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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