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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O. Wilson 의 'The Social Conquest Of Earth'책 읽는 즐거움 2014. 1. 19. 01:55
Paul Gauguin,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이 그림 제목의 세 문장이 각각, 윌슨 책의 Part II, V, VI 제목이다.
Edward O. Wilson 의 책 'The Social Conquest of Earth'(2012)를 지난 주 Helen 님 블로그에서 그 표지 사진을 보고서 그날 나가서 사왔다. 잘 쓴 책, 좋은 책에 대한, 그리고 그런 책을 찾는, 내 열정의 발동이었다. 집에 와서 우선 책의 '차례'를 보고 서문을 읽어 보니, 예상했던 대로 당장 읽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읽고 있던 소설의 몇 페이지 남은 것만 마저 읽어버리고서는 곧장 윌슨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제 아침에 다 읽었다.
역시 잘 쓴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얼마전에 거의 다 읽고도 뒷 부분이 지겹기도 하고 해서 그냥 내려 놓은 Robert Wright 의 'The Moral Animal: Evoutionary Psychology and Everyday Life'(1994)를 떠올리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해서 미리 알지 못해서 Wright 의 책에 쓴 시간이 사실 아까웠다. 비슷한 내용을 다룬 책 중에선 아주 잘 쓴 책들만 읽고 소유하고 싶은, 앞에 말한, 그 열정 때문이다. 과학 저술가인 Wright 의 그 책도 당시 상당히 호평을 받은 책이지만, 아직 초창기인 분야에서 그 책이 20년 뒤졌다는 점을 떠나서도, 윌슨의 책은 확실히 달랐다. 사회생물학(sociobiology)에서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hychology)에 이르는 그 분야의 창시자라고도 할 수 있는, 하바드대 곤충학 교수인, 읠슨은 '일반 비소설'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뛰어난 문필가이기도 하다.
윌슨이 83세에 이런 책을 낸 것도 그렇지만, 이 책의 한 가지 간단한 요약이 그와 그의 공동연구자가 2010년에 얻은 획기적인 새 연구결과의 설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내게는 참 놀랍고도 존경스럽다. 그 연구결과란, 인간성의 생물학적 기원을, 이전에 대체로 받아들여졌던 '이기적인 유전자(selfish gene)'와 '친족선택(kin selection)' 이론이 아니라 기본적인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으로서의 개체(?)선택(individual selection)과 그룹선택(group selection)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는 거다. 여기서 '선택'은 다음 세대의 (변화한) 자연조건에서 '결과적으로' 개체나 그룹이 살아 남는 것을 뜻하고, 개체선택이나 그룹선택은 그렇게 살아 남은 개체나 그룹의 특성(특질)을 말하기도 한다.
사회적 곤충의 진화 이야기와 함께, 인간성(human nature), 문화, 언어, 도덕과 명예, 종교, 예술의 생물학적 기원에 관한, 알맞은 분량의, 명료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설명을 상당한 문학적인 즐거움도 느끼면서 읽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책이다. 아래에 몇 구절을 인용한다.
"더 중요하게도, 분명히 그룹선택 과정이 진보된 사회적 행동의 원인이다. 그것은 또 진화에 필요한 두 요소를 갖고 있다. 첫째로, 협력, 공감, 네트워킹 양식 등 그룹차원의 특성들은 유전하는 것임이 -- 곧, 그것들이 사람마다 어느 정도 유전적으로 다른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협력과 통일성이 경쟁하고 있는 그룹들의 생존에 명백히 영향을 준다는 거다." (p 290)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다층적 진화에 의해서 유전적으로 생겨났다고 하는 상당한 증거가 현재 존재한다. 증가하는 수의 진화생물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믿는, 이런 해석이 옳다면, 우리는 (각각) 개인선택과 그룹선택에 맞는(유리한) 행동 요소들의 지속적인 갈등을 예상할 수 있다. 개인 차원의 선택에서는 그룹 소속원들 사이에 (중략) 경쟁과 이기적인 행동이 생겨나기 쉽다. 반대로, 그룹 사이의 그룹선택에서는 (중략) 더 큰 너그러움과 애타주의로 표현되는 비이기적인 행동이 생겨나는 경향이 있다." (p 274)
윗 구절과 관련해서, 정의감과 소속 그룹에 대한 충성심, 예를 들어, 애국심의 상관관계가 사람에 따라 다른 그 차이의 기원에 관한 설명이 궁금해진다. 문화적 진화의 영향도 클 것 같다. 그룹선택의 특성이랄 수 있는 공감(empathy), "네게 싫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마라"는 황금률, 그리고 정의감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태리인들은 평균적으로 더 수다스럽고 영국인들은 더 내성적이고, 일본인들은 더 공손하고, 등등, 일지 모르지만, 인구집단 사이의 그런 평균적인 성격 특징들의 변이보다는 각 인구집단 내에서의 그런 성격특징들의 변이가 훨씬 크다. 그 변이는 놀랍게도 이 인구집단이나 저 인구집단이나 아주 비슷한 걸로 드러난다." (p 100)
어느 나라에나 별 성격의 사람이 다 있고 그 분포도 거의 같다는 거다. 소설이나 많지 않은 경험을 통해서도, 아니 그런 것 없이도, 다들 그럴게 생각할 것 같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해서 말할 때도 객관성, 공평성을 잃지 않는 게 옳다.
"인류를 억압적인 형태의 종족중심주의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좋은 첫 단계는, 신을 위해서(대신해서) 말한다거나, 신의 특별한 대리인이라거나, 또는 혼자만이 신의 뜻을 안다거나 하는, 힘 있는 사람들의 주장을 정중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자기도취자들'(purveyors of theological narcissism) 중에는 자칭 예언자들, 사이비 종교의 창시자들, 열렬한 복음주의 목사들, 아야톨라들, 대사원의 이맘(imam)들, 유대교 최고 지도자들(chief rabbis), 탈무드 대학의 학장들(Rosh yeshivas), 달라이 라마, 그리고 교황이 포함된다." (p 293)
재미있었던 것 하나는,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ape)와 갈라진 게 6백만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비해 이미 6천만년 전에 지금 같은 상태였던 개미 사회'는 그동안 "개미 수준에서의 완전성과 안정성을 가져오고 변화와 개선의 통로를 닫아버린 바로 그 적응적인 전문화(adaptive specialization)의 기적 때문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개미들의 경험이 더 이상의 발전에 이르지 못했다"고 Lewis Mumford 는 (그의 책 'The Conduct of Life'(1951)에) 썼는데, 윌슨은 그렇게 된 한 이유로, 개미가 불을 이용할 수 없었다고, 그리고 그것은 불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면서 불을 만들거나 운반하기에는 개미의 체구가 너무 작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의 진화하는 문명의 엄청난 문제들이 종교적인 신앙들이나 사상들이나 또는 전투적인 국가들 사이의 경쟁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 큰 문제들은, 그들을 나누는 파벌들이 어떤 것이든 그들 간에 합리적인 협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큰 해법'을 요구한다는 것을 [...]." (p 296)
* 인타넷에서 가져온 고갱의 그림을, 그냥 보고 즐기려고 두 장 더 올려 놓는다.
Gauguin, Two Tahitian Women.
Gauguin, Tahitian Mount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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