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아닌 길을 걷다가 아예 덤불을 만났다.
덤불을 처내며 걷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는 데까지는 가봐야지 하는데 다시,
이전보다는 험한, 길 아닌 길로 바뀌었다.
더 힘든 줄 모르겠는 건 길들어서겠지.
* * *
이른 아침 공원, 강아지 일보게 하느라
비닐봉지 들고 뒤따라가는 사람 보인다.
길들이기 안 되면 길드는 수밖에.
아기가 밤중에 깨서 울면 따라 일어났던
오래전 그때 생각이 난다.
(수 7/18/12)
------------------------------------------------------------------------------
-
eunbee 2012.07.19 01:24
길은 원래는 없던 것이지요.
그 누군가가 덤불을 헤치며 길을 만들고...
그러고보니 교수님은 처음으로 '그 길'을 만든 분이시네요.
길들여져서 힘든 줄도 모르게 되었으니
이젠 그 길의 歷史이십니다.
세상살이가 그런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
갑자기 어린왕자의 여우가 생각나네요.노루 2012.07.19 03:03그렇네요,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
자연이나 환경에게도 이렇게 저렇게 해보면서도
길들여지는 것, 그렇게 사는 것. -
안나 2012.07.19 18:40
노루님의 마음이 자꾸만
더 깊이 보고 느끼시고 있는거 같아요.
그것이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나, 기억인지
아니면 옛일에 비추인 현재인지요...-
노루 2012.07.19 22:36깊이 보고 느끼고 그런 게 아닌 게, 실은, 그럴
여유 없이 한두 가지 생각만 들게 하는 일들이
요새 좀 있었지요. 그래서 일기처럼 적어 놓은
겁니다. 깊이 생각하고 나서 짧게 써놓으면
나중에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시 못 알아
볼지도 몰라서요. ㅎ ㅎ
그런데. 안나님 얘기 듣고 보니, 생각하고
있었던 게 "옛일에 비추인 현재"가 맞네요.
-
-
헬렌 2012.07.19 22:23
아들 아이 어렸을 때, 아직 용변을 가릴 줄 모르면서도 기저귀를 안차려고 해서
그냥 뒀더니 아무데나 일을 봐놓더라구요.
남편은 그걸 보면 저한테 와서 빨리 치우라고 성화를 하면서도 자기 손으로 치운 적이 한번도 없어요.
그런데 남편이 집에 리트리버 강아지를 데리고 왔는데 그 강아지가 집에다 똥을 싸거나 오줌을 싸면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얼릉 얼릉 치우드라구요. 그때 제가 많이 서운해 했어요.
자기 책임이 되고 그 강아지가 자기만 쳐다보고 의지하니 저절로 그렇게 되드래요.
저는 제 아기한테 길들여지고 남편은 그 강아지한테 길들여지고..
길들이는건 또다른 관계..
노루님 계신 곳은 아직도 더운가요? 요즘도 테니스 계속 치시나요?
-
노루 2012.07.19 23:18
우리 때만 해도 미국 부모들은 좀 더 아기를 길들이고
우리는 좀 더 우리가 아기에게 길드는 것 같았는데, 요샌
좀 달라졌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큰애가 아기 때는 밤중에
울면 내가 일어나서 안고 서서 한참을 왔다갔다 해야 다시
잠들곤 했었지요.
테니스는 여전히 매일처럼 치는데, 특히 요새, 파트너 B와의
만남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B와는
두 주 전부터는 토요일은 거르기로 했는데, 도서관에도 들러볼
여유도 생기고 그것도 좋더군요. 대체로 테니스 아니면 집이니
더위는 모르고 지내다시피 해요. 어차피 뛸 때는 더운 줄 모르고
뛰니까요.
올림픽이 다음 주말 시작이네요.
-
-
깜이河河 2012.07.20 14:03
넓은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과 작은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은 같아요
내 마음의 변화가 있을뿐....
그러다가 작은 현관도 넓게 보이더라구요-
노루 2012.07.21 01:06
그래요, 그렇지요. 같은 작은 현관이라도 어떤 이는 답답함을, 또
어떤 이는 아늑함을 느끼겠지요.
'고흐의 방'도 맘에 들고 -- 춘천에서, 창 밖에 나무가 보이는 조그만
방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자유롭고 편안 했지요 -- 지금 우리 집
아래층의 탁 트인 넓은 공간도 -- 요새 주로 집에만 있는 사람이 거기서
하루 종일 왔다갔다 하는 걸 보니 특히 -- 좋으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