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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편의 시
    2023. 2. 18. 15:04

    .

     

     

    세 편의 시에서 다 시의 대상에 대한 시인의 정이 우선

    느껴져서, 그래서 정이 간다.

     

    어제 읽은 시는 (1975년 등단) 김은자 시인의 "아, 평화롭게."

    (2004년에 등단한, 재미 김은자 시인의 시도 읽어봐야겠다.)

     

     

    아, 평화롭게 / 김은자

     

    너에게 꽃을 주리

    내게 아직 그런 향기로운 것이 남았다면

    아침마다 새로 빛나는 네 머리칼에,

    그리고 또 네게 꿈을 주리

    서른 살 마흔 살에도 이루지 못하고

    곤쟁이 젓처럼 푹 삭아서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러나 네 가슴에서

    봄언덕의 풀꽃더미처럼 확 피어날,

    그리고는 내게 남은 최후의 것,

    마지막 눈물의방울을

    네 고운 목에 걸어주리,

    지워지지 않는 추억과

    길 위에서의 긴 기다림

    기다리는 자의 쓰린 목마름을

    모두 네게 맡기면

    비워진 내 뼈와 살의 생애가

    족쇄에 채웠던 눈물의 덩이를 끊고

    무중력으로 붕 떠올라

    병원과 백화점과 터널로 가는 차와 사람들이

    시장과 아수라장과 막장을 향해

    붕붕거리고 와글대는 매봉터널 앞길에서

    붕어빵가게 하늘 위로 첫나들이 나온

    배추흰나비를 따라 가벼이

    가벼이 날아가리

    평화롭게

    비로소 평화롭게,

    나른한 봄날 오후 들길을 따라

     

     

    그저께는 하루 전날(2/14/2022) 김은자 시인의 남편 오탁번

    시인이 별세한 소식을 온라인에서 읽었다. 오 시인의 시

    "고려대학교"를 아침에 읽게 됐다.

     

     

    고려대학교 / 오탁번

     

    고려대학교의 정문에는 문패가 없다.
    서울대학교나 연세대학교의 정문에는
    커다란 동판 문패가 구릿빛 찬란하게 붙어있어서
    누구나 그 대학의 이름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고려대학교의 정문에는 문패가 없으니
    이 대학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것 참 이상하다.
    이름도 없는 대학의 이름을 모두 다 안다는 듯
    아무도 이 대학의 이름을 물어본 사람도 없다.
    입학원서 들고 처음 들어오는 고등학생들도
    여기가 고려대학교 맞습니까 물어보지 않는다.
    매일 교문을 드나드는 수천 명의 학생들도
    정문에 문패가 없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얼씨구절씨구 고려대학생 노릇 잘만 한다.
    그것 참 이상하다.
    개교한 지 일백 년이 다 되는 대학교 정문에
    동판으로 만든 문패하나 없다니?
    그런데 정말로 이상한 일은
    문패가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것.
    늘 싱거운 짓 잘하는 오탁번 교수가 십 년 전에
    이 사실을 발견하고 학교 당국에 그 사실을 물었다.
    아 그래요? 참 그렇구먼요. 흐흐 정말 그런데요.
    싱겁기 짝이 없는 것은 다 마찬가지.
    모두들 저마다 가슴속에 남모르게
    금빛의 문패 하나씩 영원히 간직하고 있다는 듯,
    구릿빛 문패는 통 생각도 없다는 듯.
    그것 참 이상하다.
    고려대학교.
    이 무명의 콧대 높은 선비들의 갓끈
    아침 점심 저녁때의 우리나라 흰쌀밥처럼
    아무 빛깔 없으면서도 모든 맛을 다 지닌
    고려대학교 우리 대학교 그냥 대학교

     

     

    오늘 날자의 <Writer's Almanac>에서 읽은 시는

     Maria Mazziotti Gillan"My Father Was a Young Man Then"

    (저작권에 신경 쓰여, 둘째와 마지막 넷째 연만 아래에 옮긴다):

     

     

    My father was a young man then,

    and even when he died at 92

    he never lost the happiness

    that bubbled up in him,

    the irrepressible joy of being alive,

    the love of being with friends.

     

    When I'd arrive at the house

    all those years after mom died, he'd smile

    at me with real pleasure,

    the young man he was at 15 would emerge,

    sit in the room with us

    and la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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