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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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쓰는 유언짧은 글 2022. 9. 3. 03:07
-- 뒤처리에 관하여 나 죽거든 (이미 기억의 구름이 된 나) 내가 아닌 내 시신 병원에서 나오는 그대로, 갈아 입히거나 한 번 더 볼 생각 말고 장례식 하지 말고, 될수록 빨리 화장해서 재는 남김 없이 아무 데나 버려다오. 재 뿌릴 때 절하는 따위 우스꽝스런 몸짓일랑 물론 말고. 다 끝내고 콜로라도의 하늘 한 번 올려다보려므나. 유산 상속은 자동으로 되도록 미리 다 해놓았지. 은행, 카운티 Clerk & Recorder, 그리고 DMV*에 한 번씩만 가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지. * Department of Motor Vehicles George Inness, Morning Catskill V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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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밭이 야생정원으로 바뀌었다짧은 글 2022. 8. 24. 09:42
그런데 요즘은 잔디밭보다 더 좋은 것 같다. 짧게 깎은 풀밭 여기저기엔 낮은 해바라기들, 샛노랗게 밝은 꽃들이 생글거리고 있고, 이름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작은 흰꽃들이 크고 작게 무리져 여기저기 보인다.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가동 안 해도 저리 푸르니 들리느니 생명의 찬가다. Manual-잔디깎기기계로 풀밭을 깎다 보면 보이지 않는 작은 날벌레들이 무수히 내 얼굴에 까지 날아오른다. 그래선지 뒤뜰엔 전보다 새들이 많다.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새들이 스무 마리도 더 되는 것 같다. 갈색의 이 새들 중에 밝은 노란색 머리 새가 한 마리 보인다고 큰딸이 그런다. 창밖 저만큼 멀리서도 작은 새 두 마리가 해바라기 한 포기의 줄기와 꽃을 타고 앉은 게 보인다. 해바라기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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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n Johnston짧은 글 2022. 3. 30. 01:06
아직도 사무실은 명당 자리로 옮겨야 하고 한 해 산행은 삶은 돼지 머리에 절하는 시산제로 시작해야 한다고 유구한 사상에 충실한 이들도 많아 보인다. 게이를 죽을 죄인으로 정죄한 레위기 구절은 기원 전 15세기 모세가 신에게서 받아썼다 믿는 이도 있고 기원 전 5세기에 서기관들이 지은 거로 보는 이도 있지만 다만 기원 전 옛 글을 따라서 아들의 친구이자 친구의 아들 천진한 소년 게이를 그리 정죄할 수 있는가? 29년 전, Lynn*은 2000여 일간지에 매일 연재되던 그녀의 만화에 비난과 보이콧을 예상하고도 한 달간 게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자'는 듯 그린다. 그 rerun을 요즘 즐기면서 그녀의 팬인 게 새삼 자랑스럽다. * Lynn Johnston 아래는 3/26/2022 분, 오늘 만화는 이 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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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 시대의 시작이면짧은 글 2022. 3. 18. 07:34
-- 임보 시인의 "인류사략(人類史略)"을 읽고 석기시대 철기시대 목기시대 빛의 시대 임보 시인의 역사구분이다 책의 시대 '목기시대'와 인터넷 시대 '빛의 시대'는 시인의 제창이다 그러고 보니 H. G. Wells 의 "역사 요약"*은 목기시대까지다 "다음엔, 무엇이 빛을 이길까?"* 시인이 묻고 "광막한 어둠이 밀려오고 있다!"* 시인이 걱정한다 (러시아군 포탄 우박에 우크라이나 이 도시 저 도시 곳곳에 화산 터지듯 솟아오른 뭉게뭉게 시커먼 연기구름에서 시인은 지레 어둠의 밀물을 본 걸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여지껏의 인류역사를 나도 한마디로 요약해본다 석기시대 버릇이 여전히 남아서 곳곳에 분란의 불길을 질러대고 있다 첫 번째 빛의 시대는 조금 맑게 보게 했다 지금 빛의 시대가 오랜 자연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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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고르, 톨스토이, 슈바이처, 틸리히짧은 글 2022. 3. 1. 03:31
젊었을 적 읽은 어떤 책들이 생각난다*. 분명, 그들은 성서를 진지하게 읽었다. 레프 톨스토이는 신약 성서를 진지하게 읽었다. 오른 뺨 맞고 왼 뺨 돌려대기가 고민스러워 랍비와 대화했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구약 성서도 진지하게 읽었다. 이삭을 제단에 올려놓은 아브라함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산상수훈의 진짜 화자가 알고 싶었다. 폴 틸리히는 기독교 신학자였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가 맞느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목사의 말에만 영혼을 걸 수는 없었을 게다. * 책장에 꽂혀있는, 80년대쯤에 읽었을 책들 4권이 먼저 눈에 띈다. 틸리히의 "존재하고자 하는 용기"는 유학 오면서 한국에 두고 온 책인 것 같다. Søren Kierkegaard, "Fear and Trembling and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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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댓글 경험노트짧은 글 2022. 2. 18. 02:07
'경험은 의무'*라니 경험노트도? 어느 중견 시인의 블로그에 단 내 댓글들의 반이 삭제됐다. 다가 아니라서 답답했다.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시 "그렇다면 선택은 오직 하나뿐" 그 반전사상을 읽은 포스트에서 내 댓글이 사라졌다. 시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읽힐 터 조금만 고쳐 다시 달았다: 군수공장 여공에게, 아니오라고 말하시오, 라는 시는 실상 우습지 않나요? 민족주의를 조심하시오, 평소의 그런 시가 더 인문적이고 오히려 낫지 않나요? 다음 날에도 살아 있었지만 내 무례를 내가 지웠다. 시나 쓰면서도 사는 시인이 먹고 살려고 일하는 군수공장 여공에게 반전의 이름으로 그만두라니! 그거참 우습다는 걸 시인에 대한 불경으로 읽었을까 그럴 리야. 민족주의나 애국심이 전쟁을 낳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좋지 않냐는 말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