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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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서짧은 글 2014. 9. 14. 03:16
뜰이 있어서 좋은 점 하나는 원할 때 잠깐 나가서 돌볼 수 있다는 거다. 그때마다 한가로움과 평화로움에 감싸인다. 뜰이 나를 돌보는 건가. 책과 인터넷과 설거지에 더해 뒤뜰 그리고 창밖으로 올려다 뵈는 하늘이 집에서의 나의 특별한 다섯 친구들이다. 가을을 못 기다린 단풍. 뒤뜰 울타리 옆 부추밭. 24년 전부터 없애려고 파헤치고 해도 소용이 없어서 10년쯤 전부터는 그냥 내버려둔다. 뭔지 모르지만 열매를 맺으니 한결 이쁘게 보인다. 잔디밭이 야셍화 만발한 풀밭으로 바뀌었다. 한가위 달을 보려고 뜰에 서 있기는 했지만 ... 사과나무의 낮은 가지에 달린 사과를 보니 벌레가 '한 점' 안 찍어 놓은 게 없다. 벌레들이 사과나무 관리를 참 잘 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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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한 당근을 먹다가짧은 글 2014. 8. 25. 04:29
요새 우리 집 식탁에 자주 오르는 스팀한 새끼 당근의 그냥 그 맛이 은근히 맛있다, 설익게 쪄진 고구마 같은 맛도 난다. 구운 감자도 스팀한 브로컬리도 소금만 쳐서 구운 고기도 그냥 제 맛으로 참 맛있다. 돌마다나 사람마다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걸까. 그런데 당연한 얘기지만, 아주 고급 차를 몰거나 터무니없이 값비싼 명품 가방을 들었거나 그래서 더 멋져 보이는 사람도 -- 본 적은 없고 상상도 잘 안 되지만 -- 있을 거고 그 반대인 사람도 있을 거다. 낯설던 사람이 친한 사람이 되고 낯설던 것들이 낯익은 것들이 되고 좋아하게 되는 건 참 좋은 일이다. Hopper, Cape Cod Suns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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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짧은 글 2014. 8. 8. 04:40
Chagall, Window in Artist's Studio. 그 아이는 어떤 땐그를 정말 힘들게 한다.앞으로 나아가려는 게 보이는다른 아이들과 달리뒤로 가고 있다. 하지만 여느 땐그 아이는 그에게 귀엽기만 하다.아이가 귀여운 것사람들이 애완동물을 귀여워하는 것어찌 같고 다를까. 아유, 이뻐.때때로 그 아이는 바로 앞의그가 처음 눈에 들어온 듯,소녀가 이웃 집 아가에게 하듯,쓰다듬으려 든다. 식탁 앞에 앉은 아이는포도알들이 담긴 그릇을 한 손으로 잡아 들고아주 천천히 입으로 갖다 댄다,숭늉 마시듯 마시려 든다. 얼른그가 그릇을 내려놓는다.잠깐 새 또 아이의 입으론, 빵이 놓인 접시가서서히 도킹을 시도한다. 물 마셔,그가 물 컵을 들고 다가서면아이는 새끼 새처럼입만 내민다. 아이는 잘 웃는다.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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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짧은 글 2014. 8. 7. 01:34
불 밝힌 창가를 지나다그녀의 방에 있는 그를 보고서는아, 그래서였구나. 그런데호수 속에 잠긴 하늘이나산을 품고 잔잔히 떨고 있는 호수는늘상 보면서도여태껏 몰랐다. 호숫가 내게도 스며드는평온한 행복감, 이제야 알겠다. -- eunbee 님 블로그의 포스팅 '8월이에요' 에서 문정희 시인의 '호수'를 읽고 가벼운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걸 조금 바꿨습니다. 덴버 대학 교정 ---------------------------------------------------------------------------------------- sellad (세래드)2014.08.07 08:17 덴버대 교정이 산뜻 하군요!노루2014.08.07 09:33그런데 저 붉은('colorado') 돌에서는 아직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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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실수였어짧은 글 2014. 8. 3. 09:50
한낮에 테니스 치고 나서 아직도 한낮에 생맥주 700cc 두 잔 마시면서야 내가 내게 분명히, 또렷이, 말했다. 그건 실수였어. 30년 만에 다시 만난 사람 사진에 담아두지못 한 거 그건 실수였어. 벌써 12년 전 일. 우리. 아무도 모르는 우리. ---------------------------------------------------------------------------- sellad (세래드)2014.08.03 11:11 실수를 하더라도 30년 만이면 우선은 만나고 싶군요^^ 노루2014.08.03 11:56 "우리 만나요!" 하던 그 '우리' 목소리는 하여튼 남았네요. (혼잣 소리 한 거, 삭제하려고 열었는데 한 발 늦었네요. 할 수 없지요. ㅎ) eunbee2014.08.03 1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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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짧은 글 2014. 7. 19. 00:54
슬픔엔 아름다움이 들어 있다네. 아니라구? 슬픔이 떨구는 이슬 보석 못 보았나? 그런데 그거, 우리 생명의 고향의 징표 아니야? Georgia O'Keeffe, Landscape --------------------------------------------------------------------------------------------- willowpond2014.07.19 01:08 맞아요, 슬픔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더군요.노루2014.07.19 04:23그래도 슬픈 일은 정말 안 생기면 좋겠는데, 세상이그렇지가 못하네요. 저 Ukraine에서의 비행기 추락 사고는 또 얼마나 ...eunbee2014.07.1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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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거친 비유짧은 글 2014. 6. 17. 21:40
읽기가 패키지여행 같다면 쓰기는 배낭여행. 읽기는 일종의 쓰기 쓰기는 일종의 읽기 쓰는 즐거움을 놓고 그런 걸 떠올리다가 문득 생각난 매우 거칠은 비유. ---------------------------------------------------------------------------------- 파란편지2014.06.18 11:07 "읽기는 일종의 쓰기/쓰기는 일종의 읽기"라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는 영역 혹은 경험하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하는 경구입니다. 그에 비해 저 "읽기가 패키지여행 같다면/쓰기는 배낭여행,"이라는 부분은, 그 부분 역시 그렇긴 하지만 참 재미있고 오묘한 비유입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행의 목적, 묘미, 준비, 과정, 결과...... (보통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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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의 다이어트짧은 글 2014. 6. 2. 09:50
아이가 이젠달지 않은 호밀빵도 먹는다.맛있어! 맛있어! 하던 스타벅스의 '바나나 왈넛' 빵보다도 잘 먹는 것 같다. 더는, 아이 때문에 '스위트 이탤리안' 빵을 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젠아이가 빵 조각 다 먹기 기다리는 거그거 세월없는 일이다. 가끔은, 아니 요새는 종종,아이의 접시에서 벌써 빵이 사라진 걸 본다. 그럴 땐 이젠곧장 식탁 아래로 눈이 간다.한 구석만 조금 베어 먹은 빵 조각들이 거기 있다(통째 떨어뜨릴까봐 두세 조각으로 나눠서 주었던 빵이다.) 아이가 알아서 다이어트 하는 셈 치기로 한다.아직은 그게 필요도 하니까. 식탁 밑에서 기면서 빵 조각 줍는 나는테니스 치고서 몸풀기 빼먹은 탓에다리에 쥐가 날까 조심한다. 그런데 아이의 다이어트를 언제까지?새 꾀를 이젠얼른 또 찾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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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짧은 글 2014. 3. 31. 11:04
그녀가 자줏빛 한복 차림으로 안방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볼 수 있었을 턱이 없다. 다만, 자목련 꽃을 보면 지금도 늘 먼저 그녀가 생각나는 것뿐이다. ------------------------------------------------------------------------------ sellad (세래드)2014.03.31 20:39 부럽습니다^^ 노루2014.04.01 07:08 ㅎ ㅎ 다만 생각만 날 뿐인 사람이 있어서요? ㅎ sellad (세래드)2014.04.01 08:06 신고 ㅎㅎ그 것 만으로도 충분한 봄 입니다^^ 노루2014.04.01 22:07 사실은 그래요. ㅎ 사진으로 보니 한국은 정말 봄꽃이 한창이더군요. 파란편지2014.03.31 22:52 자목..